왕과 정령 2
“사실은 아가씨가 누구든 별로 상관은 없어.”
“네?”
“그래. 실은 마신이든 인간이든, 그야말로 내가 만든 환상이든……. 나로서는 상관없는 거야, 아가씨.”
그때 처음으로, 지치기는 했지만 활력을 잃지 않았던 목소리에 자조가 섞였다.
“그저 네가, 여기에서 내가 미치지 않게 해주면.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되는 그때까지 자아를 잃지 않도록 해주기만 한다면 나는…….”
“아…….”
문득 남자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눈앞의 광경이 파문처럼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감이 희박하던 공간이 단번에 존재감을 잃어간다. 혹시 이거 꿈에서 깨어나려는 걸까?
지현의 이변을 곧 남자도 눈치 챈 것 같았다. 자신감에 넘치던 힘 있는 목소리가 약간 당황한 듯이 물었다.
“아가씨, 괜찮다면 또 와 주지 않겠어?”
“또……?”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지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면, 이름을.”
“…….”
“그러면……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자꾸만 멀어지는 현실감 속에서 지현은 반쯤 몽롱한 상태였다. 꿈에서 깨면 다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스스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조금 자신이 있었다. 이름은 대체로 들어두면 잊지 않는 편이었다. 뭔가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게 있다면 또 비슷한 꿈을 꿀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잠시간의 침묵 후, 남자가 난감한 듯이 웃는 기척을 느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