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마땅한 자 - 마이클 코리타 장편 소설
‘위장 살인’으로 새 삶을 찾은 지 10년째
전남편의 죽음으로 과거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되찾은 자녀들을 되살아난 살인자로부터 지켜야 한다
10년 전, 라워리 그룹 소속 비행기 조종사 니나 챗필드는 두 킬러의 손에서 풀려났다. 참혹한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법정에서 라워리 그룹에 불리한 증언을 하기로 했다가 회사가 고용한 암살자들에게 곧 죽을 운명이 되었던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조건으로 그들의 손에서 놓여난 것이다.
이후 리아 트렌턴이라는 이름으로 메인주 북부의 산장에 칩거하며 새로운 삶을 살던 그녀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과거 자신의 남편이었던 더그 챗필드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생이별 후 10년간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아이들이 고아가 될 처지에 놓이자, 리아는 그토록 철저하게 침묵 속에 묻어뒀던 과거를 깨워버릴까 봐 두려우면서도 아이들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을 이모로 소개하며 헤일리와 닉 남매를 데려온다. 비록 자기를 엄마라고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아이들과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과거는 리아 가족의 평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라워리 그룹의 정보망에 기어이 감지된 그녀를 죽이기 위해, 라워리 그룹의 수장 J. 코슨 라워리는 킬러계의 전설과 같은 존재인 마빈 샌더스, 일명 ‘블리크’와 랜달 폴라드를 교도소에서 탈옥시킨다. 무시무시한 두 킬러는 리아의 흔적을 쫓아 메인주로 들어선다.
라워리가 자신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던 리아는 나름의 방비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줄 누군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에 자신을 죽이려다 놓아주었던 블랙웰 형제의 피를 이어받은, 젊은 킬러 댁스 블랙웰에게. 댁스는 살인청부를 가업으로 하는 블랙웰 집안에서 암살자 교육을 받고 성장했으며, 살인에 관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이다. 그는 자부심 넘치는 킬러로서의 호기심을 동기로 이 피의 게임에 참여한다. 그렇게 리아는 “구원을 찾아 어둠 속 깊이 손을 뻗어 또 다른 어둠을 건져 올리고”만 것이다.
리아의 죽음과 자신들의 자유를 맞바꾸기로 한 냉혹한 킬러들, 리아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어 생포를 명령한 라워리, 리아의 의뢰를 받아 행동에 나서긴 했으나 의도나 목적을 파악하기 힘든 댁스 블랙웰,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라워리와 킬러들을 처단해 자신을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리아. 속고 속이는 치열한 심리전과 물고 물리는 긴박한 추격전이 연쇄 폭발처럼 이어진다. 급류 같이 거센 살육의 현장에 여든 이들 가운데,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반드시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이 싸움에서, 마땅히 죽어야할 자는 누구인가?
“리아는 죽어야 한다.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다. (…) 입 다문다고 죄 없는 사람이 되는 미래는 이제 없다.” (본문 중에서)
킬러들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 싸움
액션에 공간적 현실감을 더해주는 광활한 자연
“살인청부업자 캐릭터를 마이클 코리타만큼 잘 다루는 이는 없다”
《죽어 마땅한 자》는 마이클 코리타가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통해 선보였던 특유의 장점이 극대화된 소설이다.
오늘날 영미 스릴러소설 작가 중 ‘암살자나 살인청부업자 캐릭터를 마이클 코리타만큼 잘 다루는 이는 없다’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실제 있을 법한 ‘디테일’을 부여해 생기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빚어낸다. 그렇게 탄생한 세 킬러, 댁스 블랙웰과 마빈 샌더스, 랜달 폴라드는 흡사 ‘킬러들의 사회’에서 막 튀어나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행동과 대사를 쏟아낸다. 이러한 ‘가공의’ 사실감은 영화 〈존 윅〉시리즈가 보여준 그것을 능가할 정도다.
특히 리아와 함께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댁스 블랙웰은 이미 전작인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보여준 바 있는, 모골 송연한 블랙웰가 킬러들의 행동방식에 더해, 암살자의 냉정한 사고방식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노출한다. 작가는 냉혹한 겉모습으로만 평면적으로 그려지곤 했던 킬러를, 그들의 공허한 심리를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는 킬러들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수 싸움의 묘사로까지 확장된다. 마이클 코리타는 킬러의 시선으로 평범한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모순, 폭력성을 관찰하며 평가하는 독특한 시각을 선보임으로써 소설에 특별한 양감을 부여하는 한편, 이른바 ‘네임드’ 킬러들이 벌이는 두뇌 싸움을 통해 《죽어 마땅한 자》를 자신의 작품 목록은 물론 당대의 스릴러소설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댁스가 볼 때 리아 트렌턴의 유일한 문제는 그런 리스크의 이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아가 취하는 보호책들-예를 들면 집을 실명 대신 상호 명으로 렌트한다든가 아이들에게 새 휴대폰을 마련해준다든가 하는-은 잘 봐줘야 최소한의 조처에 불과했고,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게임에 끌어들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애석하게 됐군, 댁스는 생각했다.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가족은 더 단단히 뭉치고 유대감도 강해지는 법이다. 위험이 존재할 때 그것을 똑바로 마주해야 하며, 그래야만 비로소 가르침이 시작될 수 있다. 상존하는 위협이란 다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축복, 모든 경험치를 증폭해주며 신속한 학습의 동기마저 부여해주는 축복이었다.” (본문 중에서)
자연을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다뤘던 마이클 코리타의 전작들처럼 《죽어 마땅한 자》 또한 메인주 북부와 캐나다 자연의 아름다운 절경을 배경으로 처절한 살육전을 펼쳐 보인다. 한층 원숙해진 작가는 놀랍도록 유려한 문장으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자연을 묘사해 작품에 풍부한 현실감을 더해준다. 그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액션을 시각화해 영화 속 장면을 직접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주면서, ‘배경과의 기가 막힌 합’을 만들어낸다.
캐릭터와 갈등을 차근차근, 그러나 흥미롭게 쌓아 올리다 클라이맥스에서 단번에 터뜨리는 마이클 코리타 최고의 장기는 이제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하다. “적대적 요소가 쌓여가고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은 폭발해 하나의 장소에 모이고, 독자가 상상할 수 없는 극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펄펄 끓으면서, 그러나 얼음장같이 차가운 북부의 강물처럼 냉정한 절제를 유지하면서. 다층적이고 분열된 이야기들이 강물처럼 가공할 유속으로 모든 것을 실어가 한 장소에 내려놓듯 질주하고, 그러다 여러 강줄기가 한데 모이는 것처럼 각자의 결말이 끝내 하나의 운명으로 연결된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운명으로, 그리고 또다시 미래의 운명으로 흘러 이어지며 또 다른 선택을 촉구하듯, 인간의 운명이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체계”라고 독백하듯이.
죽여서 구원받을 것인가, 이대로 죽을 것인가
스릴러문학 속 여성 서사의 지평을 열다
마이클 코리타 각본 / 캐시 슐만 제작으로 영화화 확정
《죽어 마땅한 자》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싸움에 나서는 주인공 리아일 것이다. “좋은 엄마란 자식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엄마다”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리아는 자신이 치명적인 킬러들의 싸움 한가운데 놓인 무력한 여인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는 대신 그녀는 직접 총을 들고 킬러들에 맞서 모든 것을 끝내기로 한다. 과거의 죄와 새 삶이 충돌하는 지점,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로만아일랜드 호수처럼 두 삶이 수계(水系)를 이루는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부정된 과거가 끝내 불러온 비극에 대항한다.
《죽어 마땅한 자》는 폭력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의지와 구원이라는, 마이클 코리타 소설이 가진 주된 테마의 발전상과 함께, 그동안 작품 속에 꾸준히 녹여 시도해온 여성문학으로서의 가능성과 완성도까지 충분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죽어 마땅한 자》는 안젤리나 졸리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 있는 전작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처럼 저자가 각본에 참여해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