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 최진영 장편소설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내 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이.”
최진영의 세 번째 장편소설.
“이런 인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뒤 2010년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신예 소설가들 중에서 최진영만큼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문학평론가 송종원), “그의 세대에서 그만큼 생을 적나라하고 깊게 보는 시선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소설가 전성태)는 평처럼, 최진영은 나와 너의 생에서 마주해야 하는, 그러나 스쳐지나가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던 무기력과 외면의 순간을 뿌리째 움켜쥐며 특유의 ‘독한’ 언어의 채로 가차 없이 털어낸 뒤 독자들에게 그 날것을 대면시켜왔다.
최진영은 이전 작품들을 통해 우리 시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폭력적인 분노로써 포착한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신작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서는 분리수거조차 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이 주인공은 소수자도 피해자도 아니며, 아내와 딸에게조차 버려진 가장, 횡령과 살인혐의로 도피하는 자다. “죽는 게” 나을 만큼 비참함 자체, 눈앞에서 치워져야 할 존재.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서 최진영은 버림받아 마땅한 그를 앞세워 전혀 예상치 못한 내기에 우리를 초대한다.
“잘라버려야 한다. 메울 수 없는 그 구멍을!”
다시 한 번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살갗을 찢어내는 차디찬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골목길에 “불법 쓰레기”처럼 처박힌 한 남자. 횡령과 사기, 탈세와 살인혐의로 길거리와 여관방을 전전하는, 육신조차 검붉은 피를 목구멍으로 밀어내며 자신과의 동거를 진저리나게 거부하는 자, 원도. 그는 우리 안에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일말의 삶의 낙관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외려 하나의 질문으로 우리를 일순간 불안에 사로잡히게 한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에게 죽음이란, “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기에 그곳에서 끝내야만 한다. 이 책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서 최진영은 이미 끝나버렸다고 판결된 삶이라도 그 ‘끝남’에 온전히 자리를 되돌려 줌으로써 다시 한 번 살고자 하는 한 남자의 생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판돈으로 내걸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최진영은 원도의 조각나고 짓밟힌 기억, 수치와 증오로 버무려진 기억을 집요하리만큼 물고 늘어진다. 두 명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한 아버지는 여섯 살 원도의 눈앞에서, “아버지를 믿어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는 “물을 먹고” 죽어버렸다. 이후 나타난 다른 아버지는 원도의 모든 걸 이해한다고, 그러니 너 역시 모든 걸 이해해야 된다며 원도를 옥죈다. 하지만 어머니는 원도를 뒤로한 채 무엇에 홀린 듯 하루 종일 봉사활동을 다니고, 정작 원도 앞에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울고 또 울며 그에게 공포와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것 때문이었나. 이것 때문에 내 삶이 이리도 뒤틀렸던 것인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아파트 옥상에서 첫사랑이라 생각했던 그 애와 섹스에 실패한 기억이 떠오른다. 섹스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만 남발해서 이렇게 내 삶이 뒤틀린 것이었나. 아니다. 횡령 때문인가. 하고많은 직업 중에서 은행에 발을 들인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던가. 아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대학시절 만난 유경 때문인가. 유경이 나와 그놈 사이를 두고 저울질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라 여겨지던 순간, 모든 인과가 결정되었다고 안도하는 그 순간, 여지없이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이 아가리를 벌린 채 원도를 고통스럽게 집어삼킨다. 그러나 바들바들 떠는 원도 앞에 이 아가리는 순순히 입을 열어주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 원도가 아닌) 욕하고 애원하며 입을 틀어막는 원도가 등장할 때마다 최진영은 우리들에게 자신이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 재차 환기시킨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원도 자체를 요구하는” 이야기라고, 원도의 삶 전체가 걸린 이 내기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인생에서 유일한 정답이 있다면, 그것은 실패”라고 말하는 원도에게, 이 내기(소설) 자체는 이미 실패가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최진영은 마치 미장아빔(mise en abyme, 심연으로 밀어 넣기)을 그려나가듯 원도의 내면을 고통스럽지만 치밀하게 포착해나가며 원도의 “온 생이 콸콸 쏟아져 사라지게” 만드는 구멍 사이로 날카로운 언어의 창을 찔러 넣는다. 그리고 콸콸 쏟아지는 생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구멍들과, 수없이 욕하고 애원하고 막아서는 원도를 가르며, 결국 ‘그것’에 가닿는다. 원도가 원했던 모든 것 앞에 아른거리며, 언제나 그것에 달라붙고 가로채며 빼앗은 자, 내 모든 삶을 뒤틀리게 만든 장본인. “장민석이다.”
원도는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을 잘라낼 수 있을까. 아니면 결코 도래하지 않을 과거의 상처를 꿈꾸며 영원히 아물지 않을 구멍을 노려보고 또 노려볼 것인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서 최진영은 그 답을 향해 구멍으로 던져진 날카로운 창을 우리들에게도 건넨다. 우리 역시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그 구멍을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진영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를 채근하고 있다. “덮지 말고 끝까지 보라. 이것은 숱한 구멍 중 가장 광활한 구멍, 당신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그 어떤 소설보다 강렬한 통증으로 다가올,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답해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