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럽 - 당신들이 아는 유럽은 없다
더는 표준이 아닌 사회
유럽을 다시 읽다
2019년 말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일상의 대면 접촉이 중단됐고, 세계 곳곳에서 유례없는 록다운이 실시됐다. 주목할 점은 팬데믹으로 인한 서구의 대처 방식과 효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은 선진국으로서 그동안 여러 방면에서 ‘롤 모델’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의 방식에 허점이 드러났다. 방역 당국의 비일관적 조치, 협조하지 않는 시민, 인종차별, 횡행하는 가짜뉴스 등 사회 전반의 혼란이 지속됐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의 ‘K방역’ 등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처 방식은 전 세계에 본보기로 회자됐다.
《오래된 유럽》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불확실성에 빠진 유럽 사회의 혼란과 대응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기존 인식을 재고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선도 국가의 위치에 선 지금, ‘어떻게 유럽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이제 유효기간을 상실한 질문이다. ‘코로나 시대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코로나 시대의 시민 연대와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등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할 때다. 이 책은 제대로 된 답을 찾는 출발점으로써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고, 그 과정에 함께 하고자 한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유럽 세계의 민낯
“좋은 유럽인은 죽었다”
1부 〈코로나19, 상식을 뒤엎다〉에서 저자는 인권, 자유, 연대 등 유럽을 상징하는 가치들이 의미를 잃고 표류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20세기 이후 유럽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연대가 실현되는 이상적인 땅으로 평가됐다. 코로나19 사태는 그게 잠시 지속된 환상일 뿐, 나쁜 것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깨우쳐 줬다. 바이러스는 유럽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인종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유럽 시민들의 아시안에 대한 인종 혐오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여성이 박쥐 요리를 먹는 유튜브 영상이 돌자, 박쥐는 야만의 상징이 됐고 그걸 먹는다고 오해되는 사실상 모든 아시아인이 혐오 대상이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한국인들이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강변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인이면 차별해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이고, 차별 속 피해자와 가해자는 고정불변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 초콜릿 과자 ‘모렌코프’, ‘콩기토스’ 백인 산타의 흑인 시종 ‘츠바르테 피트’와 ‘슈무츨리’ 등 유럽 문화 속에 담긴 인종차별적 함의를 살펴본다.
이 밖에 저자는 오락가락하는 유럽 방역 당국의 조치, 바이러스 억제 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비협조 등을 다룬다. 특히 유럽의 마스크 착용 논란과 백신 논쟁을 세세히 조명한다. 유럽 정부의 코로나19 초기 대응과 마스크 수급 현황, 오랜 자유주의적 배경에 따른 마스크 착용 강제성 여부를 비롯해 백신을 거부하는 문화, 안티 백신의 역사, 백신 무용론, 그리고 백신으로 연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본다.
유럽이라는 환상을 덜어내다
나의 평범한 이웃, 유럽
저자는 2부 〈유럽의 민낯〉에서 유럽의 정치, 교육, 의료 등 한국 사회가 롤 모델이라 말했던 시스템의 명과 암을 설명한다. 우선 저자는 스위스 국민투표 제도의 의미와 허점을 논하면서 ‘다수결’과 ‘소수 의견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원칙 중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스위스가 자랑하는 국민투표 제도는 개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유의미한 제도적 장치이다. 국민투표는 소수 정치인이나 특권층의 결정으로부터 국민 다수 의견이 소외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국민투표는 소수 의견은 보호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스위스에서는 국민 다수의 고정관념이 법을 과거에 붙들어 놓는 일이 간혹 있다. 일례로 저자는 스위스 여성이 투표권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꼽는다.
아울러 저자는 많은 한국인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유럽식 교육’의 허상을 들춰낸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유럽식 교육’은 구체적 실체 없이 그저 문제 있는 한국 교육의 반대편 개념일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개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이고 암기식이지만, 유럽은 경쟁도 없고 원리를 파헤치는 방식이라고 간주된다. 하지만 유럽의 교육 역시 경쟁과 차별이 있고, 동네 소득수준에 따라 김나지움 진학률이 다르다. 따라서 저자는 ‘유럽식 교육’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식이 아니라 교육 문제에 있어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 유럽의 안락사와 조력 자살 제도를 살펴본다. 특히 스위스의 제도 이면에 담긴 의료 시스템의 부분적 결함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좋은 죽음’인가, 아니면 ‘좋은 삶에의 실패’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2부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좋은 삶’의 문제에서 스위스의 값비싼 보편적 의료 시스템의 명과 암을 짚으면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유럽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피다
3부 〈논쟁으로 보는 유럽 사회〉에서는 유럽 사회의 불평등, 표현의자유 등 각종 이슈와 논쟁 등을 살펴본다. 코로나19가 가시화한 빈부격차 문제에서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가진 사람들은 더 쉽게 벌고, 못 가진 사람들은 더 구석으로 몰리는 현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연대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일지 유럽에서 논의되는 팬데믹연대세 등을 소개한다. 특히 최근 약 10년 동안 스위스에서 실시된 빈부격차 해소 관련 국민투표 내용을 집중 조명하면서, 스위스 직접민주주의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자유라는 가치가 혐오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양면성을 살펴본다. 저자는 그 예로 ‘블랙페이싱’ 논쟁을 들며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다룰 때 이슈를 둘러싼 맥락과 의도, 반응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더해 언어의 문제, 즉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주요 소통 수단인 언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다.
그 외에 저자는 3부에서 팬데믹 과정에서 불거진 프라이버시 문제 등을 다룬다. ‘숨길 게 없다면 공개해도 된다’는 주장과 ‘사생활 침해에도 불구하고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의 차이점을 짚는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감염병이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를 제공할 때,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고,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이 문제의 무게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럽 사회의 다문화,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
4부 〈코로나 시대와 다문화〉에서 저자는 우선 코로나 보조금 지급을 둘러싼 유럽연합 내 국가들의 갈등 양상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유럽연합의 본래 역할과 목적, 그리고 그 존재 이유를 묻는다. ‘포트 뒤 솔레이’ 스키장이 보여준 갈등을 예로 들며, 불안한 ‘솅겐 협약’의 미래를 진단한다. 이러한 갈등을 살펴보며 ‘하나된 유럽’이 팬데믹이 종식된 뒤에도 가능할지, 저자는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아울러 4부에서 저자는 팬데믹으로 인해 서구 사회에서 되살아난 오리엔탈리즘을 살펴본다. 아시안 혐오에 근거한 ‘옐로우 페럴’과 차별적 이민정책, ‘모범적 소수자’가 가진 부정적 함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선호인 ‘옐로우 피버’ 등을 파헤친다. 이러한 편견에 따른 차별적 일반화는 펜데믹과 만나면서 각종 혐오 범죄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를 막으려면 연대뿐이라고 강조한다. 침묵은 차별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따라서 서양에서의 아시안 차별을 반면교사 삼아 한국 내 인종차별의 사슬을 끊을 것을 강조한다. 외국에서 한국인이 받는 차별은 한국에서 다른 외국인이 받는 차별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저자는 다문화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유럽 사회를 조명한다. 특히 “이기면 독일인, 지면 이민자” 취급을 받았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 출신 메수트 외질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10년 가까이 독일의 ‘모범적 이민자’로서 성공적인 다문화 정책의 상징이었던 외질에게 비난이 쏟아지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이를 시작으로 다문화 속 ‘평행 사회’ 개념과 축구 경기에서의 라마단 난제, 국가 제창 논쟁, 이민자 범죄, 무슬림 문제 등 다문화 사회로서 유럽이 겪은 진통 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앞서 유럽이 거친 시행착오를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이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팬데믹,
현실을 낯설게 만들다
저자가 《오래된 유럽》에 담아내고자 한 것은 ‘시선’에 대한 고민이다.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선, 그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은 왜 이토록 천편일률적이고 편견에 가득 차 있는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유럽이 더 낫다거나 한국이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어디가 더 우월한지 비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편견 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팬데믹으로 드러난 현실에서 비판의 시선은 타자가 아닌 스스로를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팬데믹 이후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