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세계사 3 서양 미술편 - 알고 나면 꼭 써먹고 싶어지는 역사 잡학 사전
에두아르드 마네의 도발 그리고 의문의 1승
: 주류 사회에 도전하여 새로운 세계를 열다
오랫동안 서양 미술계는 국가가 세운 ‘아카데미’의 엄격한 기준 아래 작품의 가치를 매겼다. 기독교와 신화, 역사의 한 장면을 포착하거나 왕족과 귀족의 모습을 담아야 기준을 통과하고 화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서민과 그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화단(畵壇)의 배척을 피할 수 없는 자살 행위였다. 1863년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여인의 나체를 소재로 한 두 개의 작품이 내걸렸다. 하나는 국가가 주최한 ‘살롱’에서 극찬을 받은 뒤 황제가 구입했고, 나머지는 평단의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호평을 받은 작품은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이었고,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작품은 에두아르드 마네의 〈올랭피아〉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여신 비너스는 바다의 물결 위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나체로 누워 있다. 그림 앞에서 신사들은 비너스의 나신을 감상하며 자신의 지식을 뽐냈다. 여인의 나체를 대놓고 바라보면서도 신사들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그림이 ‘신화’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네의 〈올랭피아〉 앞에서 신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벗은 몸을 드러낸 여인이 프랑스에서 널리 알려진 모델 빅토린 뫼랑이었다. 익히 아는 여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워 있다. 비너스처럼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관람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불쾌함을 느낀 신사들 중 일부가 그림을 지팡이로 두들긴 탓에 〈올랭피아〉는 관람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져야 했다.
마네는 같은 해에 그린 〈풀밭 위의 식사〉라는 그림을 전시회에 출품한다. 두 여자와 두 사람의 신사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도 빅토린 뫼랑은 벌거벗은 채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음식물이 흐트러져 있고, 뒤쪽의 여자는 몸을 씻고 있다.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림을 접한 신사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만 같은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평론가들은 엉뚱한 트집을 잡았다. “붓질이 형편없군.”, “원근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식사〉는 서양 미술계에 가해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지더라도 모름지기 고상하고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수천 년 주류 사회의 인식을 무너뜨린 것이다. 아카데미의 엄격한 기준에 손이 묶였던 젊은 화가들이 마네의 뒤를 이었다. 곧이어 인상주의를 구성하게 될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 세잔, 드가 등이다. 8번이나 개최되었던 인상주의 전시회에 한 번도 참여한 적 없으면서도 마네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이유다.
미술의 역사를 넘은 역사로서의 미술
: 미술은 인류가 지나온 생각의 여정을 드러내는 뚜렷한 지표다
오늘날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미술 작품들은 왜 그와 같은 평가를 누리는 것일까? 잘 그렸으니까. 예술적으로 뛰어나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양가 없는 대답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 작품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명작과 고전으로 남은 이유는 창작자의 기예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사초는 그림에 원근법을 도입함으로써 평면인 캔버스를 입체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당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본 사람들은 벽을 파내서 조각을 한 것이라고 착각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초상화에서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실험을 함으로써 〈모나리자〉를 차원이 다른 위치에 올려놓았다. 신과 성인, 왕족이 그림의 주인공이었던 시대에 브뤼헐은 농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그 어떤 신화적 사건에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나뭇잎은 푸른색, 태양은 붉은색, 병아리는 노란색 등 대상과 색채의 일정한 패턴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시시각각 달라지는 세계의 변화를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오늘날 우리가 ‘명작’이라고 인정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시하였거나, 신과 인간,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를 역전시킴으로써 불특정다수였던 대중을 특정한 개인으로 불러냈거나, 보는 이와 보이는 것의 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대상과 사물을 인식하는 관점과 세계관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예술가들의 시도가 반영된 것들이다. 여기에 도저히 인간의 솜씨라고 볼 수 없는 천재들의 뛰어난 손길과 집념이 담긴 작품을 보탤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예술가들의 극적인 삶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다.
《B급 세계사 3 : 서양 미술편》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서양 미술의 흐름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들이 어떻게 역사에 충격을 가했고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보여 준다. 작품을 둘러싼 재미있는 해석과 더불어 그 작품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인관관계를 밝힘으로써 한 편의 위대한 작품이 구태의연한 질서와 그 질서를 깨기 위한 반작용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서양 미술에 대해서 알아가다 보면, 우리가 어렵지 않게 접하는 명작들이 단순히 캔버스나 바위, 청동 주조에 박제된 사물이 아니라, 인류가 숱한 변화를 겪으며 수정해온 세계관과 아이디어의 변곡점으로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독자를 서양 미술의 기묘한 세계로 이끄는 독특한 안내자
: 평범한 직장인에서 서양 미술 도슨트가 된 저자의 재미있는 미술 이야기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술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공부를 필요로 한다. 사전 지식 없이 백날 감상해보았자 ‘와, 잘 그렸네.’ 정도의 감흥밖에 느낄 수가 없다. 고전주의가 뭐지? 낭만주의는 또 뭐야? 바로크와 로코코의 차이는? 인상주의는 어떻게 탄생했지? 이뿐만이 아니다. 스푸마토, 임파스토, 콘트라포스토 등등의 전문 용어 앞에서 기가 죽고 만다. 게다가 회화는 사진처럼 우연히 찍힌 피사체가 단 하나도 없다. 그림 속 대상 하나하나가 창작자의 치밀한 구상에 의해 배치되어 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한 독자라면 하등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술에 일자무식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살짝 돌아서 3년 동안 1,000권의 미술책을 독파하고 휴직계를 낸 뒤 작품을 직접 보겠다며 홀연히 유럽으로 떠났던 저자가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들의 고생을 대신했으니까.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듯 따라가기만 하면 저절로 관심이 증폭되고 서양 미술의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꿰게 된다. 어디 가서 ‘B급’ 흉내는 충분히 낼 수 있을 만큼 지식도 쌓인다. 이게 이 책 《B급 세계사 3 : 서양 미술편》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