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국가경영법 - 제가와 경국
“어떻게 나라를 경영할 것인가?”
500년 조선사의 지적 얼개를 완성한 조선의 대표 지식인 24명의
삶과 도전, 열정과 성취의 기록!
율곡 이이는 선조 12년(1579) 5월에 올린 상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한쪽은 군자고 다른 한쪽은 소인이라면, 물과 불이 한 그릇에 있을 수 없고 향기로운 풀과 냄새나는 풀이 한 뿌리에서 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조수정실록》, 12년 5월 1일
이이는 자신의 당을 군자의 당으로 간주하고 상대 당을 소인의 당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대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공당(公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건강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당의 존재가 필수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이는 죽기 전날 문병 온 정철에게 인재 등용에 당색을 가리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로 붕당 화합의 신념을 평생 지키고자 했다.
이이의 메시지는 현재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 ‘내로남불’과 비난이 난무하는 정치권에 국민들은 신뢰를 잃어간다. 나라와 국민을 진심으로 위하는 진정한 지도자를 바라는 우리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동시에 회의감도 짙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신간 《조선 지식인의 국가경영법》은 조선의 대표적인 지식정치인 24명이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 현실 정치에 구현해 냈는지에 주목하며 500년 조선사를 읽는다. 조선 건국을 제도의 건국으로 이끈 주역 정도전, 금기시되던 양명학을 통해 습득한 유연한 사고로 전쟁을 치른 류성룡, 신념윤리에 충실했던 송시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다.
현명한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바른 정치란 어떤 것일까? 현명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유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상은 백성에게 다가가 백성으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다.
공자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윤리적 덕목으로 수기(修己)와 안인(安人)을 강조했다. 수기와 안인은 《대학》의 용어로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이다. 수기는 사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신념윤리이고, 치인은 공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책임윤리이다. 또 수기의 실천은 제가(齊家)이고 치인의 실천은 경국(經國)이다.
이는 쉽게 말해 오랜 기간 쌓아온 신념이 곧 정치의 바탕이 된다는 이야기다. 스스로의 가치관과 신념을 닦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제가이며, 이것이 뿌리가 되어 발현된 현실 정치가 경국인 셈이다.
조선 유학자들은 제가와 경국 사이의 삶을 살아왔다. 정치윤리인 충(忠)을 가족윤리인 효(孝)의 연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효와 충의 충돌이 더 흔했고, 공사(公私)의 경계도 냉혹하게 구분해야 했다.
조선 지식인, 제가와 경국 사이에서 길을 찾다
제가와 경국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사대부 출신 조선 정치인의 숙명이었다. 사대부란 말 자체가 한 몸으로 학자와 정치가의 두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선 정치인은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독서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책상물림으로 일생을 마치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를 치르고 관료로 진출해 자신의 신념을 정치에 구현했다.
조선의 정치인은 자신의 학문은 허학(虛學)이 아니라 실학(實學)이라고 자부했다. 그들의 실학은 일상의 실용성 추구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가의 먼 장래를 살피는 데 실학의 효용성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실학의 방식이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조선 지식인 사회에는 학문적 경향을 달리하는 다양한 학파가 공존했고, 그들의 정책경쟁은 경연이나 상소 등의 형태로 공론장에 표출되었다. 그들은 학문적 신념을 바탕으로 경쟁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는 죽음도 불사할 정도로 치열했지만, 정쟁 때문에 당파의 공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늘의 정치가 상대 당을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책의 구성]
《조선 지식인의 국가경영법》은 5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조선 건국 초기 지식 국가의 설계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참여한 정몽주, 정도전, 권근, 기화 등 네 명을 다루었다. 제2부는 정치윤리가 실종된 시대에 일상윤리의 실천을 지식정치인의 신조로 삼았던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그리고 이언적ㆍ이전인 부자의 삶을 다루었다. 제3부에서는 학문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가의 길을 걸었던 이황, 조식, 김인후, 성혼, 이이 등 다섯 명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제4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에 위국헌신(爲國獻身)의 표상이었던, 류성룡, 조헌, 김장생, 김상헌, 최명길의 삶을 조명했다. 제5부에서는 예송 논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임금에게 맞선 김집, 송준길, 송시열, 허목, 윤휴, 박세채 등 여섯 명의 삶과 정신을 살펴보았다.
최 교수는 “인간에게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고, 내일의 과거”라며 “이 책이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역사를 호흡하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정치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 봤거나, 사적 이익을 정치적 이념으로 둔갑시킨 정치에 신물이 났거나,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정치인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