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유 어게인 in 평양 - 나는 북한 최초의 미국인 유학생입니다
북한은 정말 ‘세계 최악의 나라’인가?
북한에서 어학연수 과정을 밟은 최초의 미국인 트래비스,
평양 사람들의 가장 내밀한 얼굴을 들여다보다!
남북관계가 몇 년 사이에 화해 분위기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북한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곳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북한으로의 방문 또한 엄격하게 금지된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금단의 땅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은둔의 나라’ 혹은 ‘세계 최악의 나라’라는 불명예 또한 갖고 있다. 현실이 이런 탓에 잊기 쉽지만 사실 북한은 대한민국 국적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여행이 상당히 자유로운 곳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매년 북한에 방문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북한에게 ‘적국’이었던 미국 국민은 아무래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그 벽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이 책의 저자 트래비스 제퍼슨은 북한에서 어학연수 과정을 밟은 최초의 미국인이다. 그는 2016년 여름, 한 달간 평양에 체류하며 북한의 명문 김형직사범대학에서 조선어를 배웠으며 언어를 배우는 틈틈이 평양과 그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북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했다. 이 책은 저자가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에세이이자 르포르타주이며 그는 평범한 북한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선입견과 편견이 덧씌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저자는 수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획일화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은 유지하되, 자신이 보고 느낀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에서 공식적인 어학연수 과정을 밟은 독특한 이력의 저자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지척에 있지만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 이해하거나 알기 어려웠던 북한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수차례의 북한 방문 경험과 한 달 동안의 어학연수,
외부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북한을 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겨내다
소설가인 저자는 성인이 된 이후로 주로 독일 및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는 ‘적국’의 국민이다. 그는 2012년 평양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번 북한을 다시 찾았다. 북한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여름에는 호주 출신의 동아시아학 전공 대학생인 알렉 시글리가 운영하는 관광 업체 ‘통일투어’를 통해 김형직사범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조선어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으며, 한 달 동안 학생이자 여행사 대표인 알렉, 프랑스 대학생 알렉상드르와 조선어를 배웠다.
저자 일행은 언어를 배우는 도중에 틈틈이 알렉과 동업해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한 ‘조선국립려행사’의 ‘김 동무’, 안내원 ‘민’과 ‘로’와 함께 북한 곳곳을 여행한다. 문수 물놀이장과 원산 해수욕장에서는 여가를 보내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신천양민학살 기념박물관과 각종 골동품을 모아놓은 국제친선전람관을 관람하며 북한 체제의 이데올로기 선전도 경험한다. 저자는 북한 사람들이 세상 여느 나라처럼 자본주의의 급격한 침투로 변화 일로에 있다는 사실과 새로운 젊은 지도자의 등장에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 해외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들의 경우 결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체제의 실상과 허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안내원 민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저자와 그 일행에게 조금이나마 속마음을 내보인다. 저자는 이를 통해 북한 사람들 또한 그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며 그동안 우리가 북한을 너무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남한 사람들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북한과 가까이 있음에도 정작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면 저자는 외부인이기에 북한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으며, 북한 체제의 기만과 허상에 혼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응시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한의 참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북한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가졌던 의심과 적대감이 편견과 오해로 인한 것이며 상당 부분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제대로 알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웠던 명제 또한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엄혹한 현실의 교차 서술,
오해와 편견을 벗기는 동시에 비판적 거리를 확보,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 자료로서의 가치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북한의 내밀한 모습을 묘사하고 편견을 깨뜨리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실상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문수동 외교단지에서 열린 파티에서 만난 각국의 외교관들이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북한 체제에 지쳐 회의를 느끼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지휘할 당시 머물렀다는 곤자리혁명사적관에서 거짓 사료로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현실 또한 가감 없이 그려낸다. 또한 저자가 눈으로 본 것 이외에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8장 ‘병풍’에서는 직접 만난 탈북자들의 사례를 자신의 경험과 교차 서술한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정보원을 보호하고자 실제로 겪은 일을 기록하되 적절한 가공을 거쳤다. 주로 2016년 어학연수 때의 경험을 서술하되 경우에 따라 그 이전의 경험을 중간에 삽입했고, 글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자 사건의 순서도 조금씩 바꾸었다. 등장인물 또한 여러 사람을 섞어서 만든 가상의 인물들이며 이름은 거의 가명이다. ‘김 동무’와 ‘민’이 근무하는 ‘조선국제려행사’는 북한의 여러 국영 여행사의 운영 자료를 참고해 만들어낸 가공의 회사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을 서술하면서도 일정 정도의 가공을 거침으로써 북한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 책이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서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이어서]
“이 나라 정부의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런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든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민, 언론의 영향력은 강력해요. 그 말은 단지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나라를 무서워한다는 겁니다.” 나는 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곧 내 말과 행동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앞에 서 있었다.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을 무서운 곳이라고 하다니 말이다. 민은 이러한 끔찍한 아이러니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대담하고 모험적인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만약 그들이 여기 와서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면 두려운 마음이 가실 겁니다. 그들은 이곳이 실제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거예요.” (432~433쪽)
그러나 그 진실이란 것은 너무 평범해서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기 쉽다. 그 진실을 봤다고 하더라도 알렉상드르나 나나 알렉은 그것이 진실인지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원래 체제가 사람보다 우선이고 그런 현실은 우리가 떠난 뒤에도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다. 그 진실은 알렉상드르가 김 동무와 나누는 바로 이 대화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밝혀지고 있었다. 교육을 통해 ‘자아 찾기’를 할 수 있는 인문학적 방식의 사회와, 스스로를 국가의 도구로 미리 규정하는 사회의 양립할 수 없는 극적인 차이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서, 진실은 마치 아침 안개 속을 파고들어 왔다가 안개가 걷히는 순간 사라지는 햇살처럼 어딜 보든 바로 눈앞에 있다. (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