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 브렉시트와 EU 권력의 재편성
브렉시트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EU는 계속 독일의 뜻대로 움직일 것인가?
유럽은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이나 갈까 싶을 정도로 먼 곳이다. 그래서인지 유럽, 특히 EU가 세계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해 있는 EU는 미국?중국과 아울러 국제 정치?경제의 3대 주역(G3) 가운데 하나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G3 중 미국과 중국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고, 최근 벌어진 미중 무역전쟁처럼 미중 사이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런 점에서 EU는 어쩌면 더 중요한 패일 수 있다.
이 책은 40년이 넘는 풍부한 외교 경력을 가진 영국의 전前 독일 대사 폴 레버가 전하는 EU와 독일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저자는 EU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된 독일이 어떻게 그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부터 독일이 가진 힘의 배경인 경제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특성과 제도, 독일의 연방제와 EU 구조의 유사성, 향후 EU의 전개 및 독일의 영향에 대한 전망까지 보여준다. 특히 최근까지 EU의 역동적인 모습과 앞으로의 20년 동안 일어날 큰 흐름을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통합의 결과로 탄생한 EU,
프랑스에서 독일로 권력이 이동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유럽에서의 전쟁을 피하고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유럽 통합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런 논의 결과 가운데 하나로 1951년 전쟁에 필수적인 철강과 석탄의 공동 관리를 목적으로 유럽철강석탄공동체(ECSC)가 탄생했다. 그리고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발족하면서 자유무역지대가 만들어지고, 1967년에는 유럽공동체(EC)가 출범하면서 관세 동맹이 완성되었다. 1993년에는 이 유럽공동체가 EU로 전환하면서 상품, 서비스,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단일 시장이 출범했다. 또한 솅겐 조약으로 회원국 내에서의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유럽을 여행할 때 여권 검사 없이 여러 나라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EU는 개별 국가와 유사한 유럽의회, 유럽사법재판소, EU 집행위원회 등을 통해 초국가적인 입법, 사법, 행정 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EU는 회원국 국민들의 직접 선출에 의해 구성되는 유럽의회,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 회원국 장관들의 회의체인 각료이사회, 각종 정책 입안 및 집행을 담당하는 EU 집행위원회를 포함해 유럽사법재판소, 유럽중앙은행, 유럽회계감사원 등을 두고 있다. 그리고 EU에서의 정책 결정은 유럽이사회가 합의로 큰 방향을 정하고, EU 집행위원회가 법안 발의권을 가지며,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 승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독일이 EU를 지배할 수 있게 된 힘의 배경은 무엇인가?
EU의 변화는 이제 독일에 달려 있다!
EU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은 복잡하고 어느 한 나라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조이며, 거의 모든 결정에는 타협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이 EU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은 EU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른 어떤 회원국보다 독일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거나 관철되고 있다는 뜻이다.
독일이 이런 힘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0년대 후반의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0년대 초반의 유로 지역 재정 위기였다. 위기 해결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독일은 유럽의 중추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 결과 ‘모범 국가 독일’이라든가, ‘유럽의 수도는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이 아닌 베를린’이라는 표현도 낯설지 않았다. 재정 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7월 말,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 장관이 독일의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기 위해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 장관의 휴가지로 찾아간 일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U에서 독일의 발언권이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일이 부담하는 EU 예산에 대한 기여금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또한 유로 지역 재정 위기 당시 건실한 경제를 기반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던 유일한 강국이면서, 저자가 지적한 대로 EU의 기본 원칙에 바탕을 둔 주장을 펼친 것도 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EU 조약과 안정·성장 협약의 기본 정신에 기반을 두고 주장을 펴나갔다. 안정·성장 협약은 유럽통화동맹 회원국들이 매년 재정 적자는 GDP의 3% 이내, 정부 부채는 GDP의 60% 이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협약이다. EU에서 가장 큰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난민 처리 방식에 관한 제안에서도 그 바탕은 ‘가장 많은 난민의 수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독일은 EU의 기본 정신을 앞장서 지켜나가기 때문에 EU에서 발언권을 높여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독일의 위상이 앞으로 20년 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독일의 견해는 앞으로 20년 동안 어떤 국가가 EU 회원국이 될지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EU가 무슨 일을 할지 정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저자는 또한 독일의 한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확실한 것은 독일의 EU 주도가 주로 독일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맞춰져 조정될 것이란 점이다. 독일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자국 경제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힘을 행사한다. 그 이상의 근원적인 비전이나 목적은 없다.” 즉 EU의 미래를 보려면 독일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독자들은 영국 내 최고 유럽 전문가의 시각을 통해 독일이 주도하는 EU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