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꽃 - 꽃 같은 여배우의 밥맛 나는 이야기와 레시피
꺼끌한 판두부와 시장에서 사 온 콩나물, 달그락거리는 냄비뚜껑…
여배우가 차린 식탁 위에 펼쳐지는 소박하지만 가득한 누구나의 맛 그리고 그 추억에 관한 이야기
모든 음식은 추억이다
통통한 갈치 한 토막을 쟁취하기 위한 신경전, 식구들과 머리 맞대고 앉은 밥상 위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숟가락과 젓가락, 커다란 고무통에서 쑥쑥 뽑아내 검정색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은 콩나물, 고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천 원짜리와 동전을 탈탈 털어 사먹는 조미료 듬뿍 친 쫄면.
누구나 있을 법한 그 시절의 추억이다. 누군가에게는 문제집 값을 뻥튀기해서 남긴 잔돈으로 두근대며 먹었던 달콤 짜릿했던 쫄면이,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차이고 눈물에 콧물까지 뚝뚝 떨어뜨리며 먹었던 짭짤하고 쌉쌀했던 쫄면이 떠오르는 그 추억 말이다.
전북대 앞 쫄면 집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단짝 친구와 수다를 떨며 쫄면을 먹던 그 어여쁜 여고생은 옆자리의 한 아주머니가 한번 찾아오라며 건넨 미용실 명함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미스춘향을 여러 번 배출했던 유명한 미용실의 원장님이었다. 그 해 그 여고생은 미스춘향 선으로 당선되어 꽃마차를 탔다.
이 여배우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음식은 그저 한 끼 때우기 위한 식사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그득한 마음을 나누었던 밥상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까지도 결코 음식을 시큰둥하게 본 적 없는 이유고, 음식에 담긴 추억을 간절하게 간직하는 이유며, 식탁을 앞에 놓고 마주앉은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이유다. 어색한 자리에서 체면치레하며 먹는 밥이 깔깔한 만큼 친한 사람이 건네는 “오늘 우리 뭐 먹을까?”라는 말에 잔뜩 설레는 그녀의 추억 이야기는 그래서 따뜻하다. 소박하고 평범해서 더 따뜻한 이야기는 금세 내 이야기가 되고,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오늘 우리 뭐 먹을까?
전라북도 전주 출신의 여배우에게는 콩나물 하나만으로도 이러고저러고 맛나게 요리를 차려내는 친정엄마가 있다. 친정엄마는 밥 한끼를 차리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중략 손도 빠르고 솜씨도 좋아 부엌에서 뚝딱 푸짐한 한 상을 금세 차리곤 하셨다. 아무리 바빠도 밑반찬만으로 상을 차리는 법도 없었다. 따끈한 국이나 찌개 하나는 꼭 올렸고, 재료가 없으면 달걀말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 상에 냈다. 92쪽, 엄마의 손맛 중에서
친정엄마의 따뜻한 요리 솜씨를 물려받은 그녀의 레시피는 사실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책 속 부록에 소개된 27가지의 레시피 중에는 까다로운 재료나 대단한 조리기구가 필요하거나, 깐깐한 계량법이나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없다. 오히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메뉴들이 많다. 그러나 갈치구이 별책 27쪽, 자꾸만 생각나네 갈치구이 하나도 “쌀뜨물로 씻어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하고, 녹말가루를 묻혀 미리 적당하게 달군 팬에 올린 다음 소금을 툭툭 뿌리라”는 친절한 설명은, 사실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음식을 조금 더 맛있게 만드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밥꽃〉에 나오는 모든 요리의 에세이와 레시피는 이렇게 소박해서 부담스럽지 않지만 어느 가족의 밥상 위에나 한번쯤 올라갔을 법한 따뜻한 가정식이라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여배우의 밥, 그 꽃같은 이야기
〈밥꽃〉은 여배우 박지영이 써내려간 밥, 그 꽃 같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싱그러운 매력의 그녀는 PD 출신인 남편의 사업 차 베트남으로 이주했고, 작품 활동을 위해 일 년의 절반은 서울에서 지내며 여행자처럼 자유로운 삶을 꾸려오고 있는 그녀가 엄마, 아내이면서 여자, 여배우로서의 삶 또한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맛깔스러운 그녀의 ‘밥’ 덕분이다.
“엄마의 곁에서 그 어떤 쿵푸보다 역동적인 조리 신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까. 나는 밥하는 일이 부담스럽거나 아무리 만들어놓아도 밥상이 허전한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서 장을 봐 저장해놓는 반찬을 만드는 일도 없다. 그저 걸어서 갈만한 거리의 슈퍼에서 갓 들어온 채소나 생선을 골라 그날 기분에 따라 엄마처럼 후다닥 만들어 한 상 푸짐하게 차릴 줄 아는 것이 재주라면 재주일 것이다” 30쪽, 장여사의 조리 신공
여배우의 밥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엄마의 손맛, 타지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간, 아이들을 위한 요리까지, 본인의 추억과 도란도란 모여 앉았던 밥상 위 가족의 추억이 모두 담겨 있다. 단란한 한 가족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사진, 음식과 추억에 관한 에세이, 단순하고 따뜻한 가정식 레시피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가족’과 함께한 추억을 담은 음식과 이야기를 식탁 위에 맛깔스럽게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