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조선 후기 최고의 지성인이자 올곧은 선비 이덕무! 그가 지금 우리에게 보내는 향기로운 일상의 메시지!”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왜, 지금, 이덕무인가!
“가난해도 책 때문에 행복하노라!”
이덕무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안빈낙도’ 혹은 ‘청빈낙도’일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도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 배고플 줄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덕무는 청렴과 고매한 정신을 추구한 조선의 선비, 바로 그 자체였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떤가? 위를 바라다보기엔 바쁘지만 주변을 돌아다보기엔 1분 1초의 시간도 없다.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지만, 내 내면의 작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작은 풀꽃 하나 들여다보는 발걸음은 떼기 쉽지 않다. 남보다 더 앞서 나가기 위해 무언가 배우고 힘쓰지만, 내 정신세계를 채우기 위해 인문학 서적 한 쪽 읽을 시간은 내기 어렵다.
물론 이덕무가 살던 조선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다르다. 당연히 우리 모두가 조선의 선비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삶을 본받지 못하더라도 그 삶의 태도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경쟁을 내려놓고 주변인 혹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김치와 밥만 있는 소박한 밥상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햇살 좋은 날의 시 한 구절 들여다보며 여유를 되찾고. 느리게 천천히 가다 보면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이덕무는 그러한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살았고, 그러한 세상은 이덕무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다.『파랑새』의 주인공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헤매던 파랑새는 결국 그들 곁에 있었다. 이덕무가 지향하는 삶도 그와 같았다. 그의 삶의 즐거움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동·서·남으로 드는 햇빛에 읽는 책 한 자락, 벗들과 주고받는 편지 한두 통, 울타리에 집 짓고 있는 거미, 식구들과 함께하는 밥상,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께 문안인사 드리기 등 소소한 일상들이 그에게는 바로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사실 ‘선비’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매함·청렴함·꼿꼿함 등이지만, 일신의 영달을 위해 자신을 속여가면서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선비들도 분명 많았다. 남들보다 앞서고, 남들보다 잘나고, 남들보다 잘 먹고, 남들보다 잘 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삶에는 정답이 없다. 주관식인 것 같은 삶은 때론 선택지가 많은 객관식이기도 하다. 이덕무는 그중 한 가지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덕무 산문집『책에 미친 바보』는 그러한 이덕무의 객관식 답안 중에 하나다. 이 책에서 이덕무는 ‘매미껍질과 귤껍질처럼 좁은 곳에서 살아도 행복’하고, ‘자신을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어서 행복’하고, ‘책을 벗 삼아 일생을 살아서 행복’하고, ‘배움을 당연한 것으로 알아서 행복’하고, ‘부모님을 공양하는 일이 으뜸이어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책에 미친 바보』가 필요하다. 가진 건 없어도 일상의 작은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줄 알았던 이덕무의 삶의 태도가 지금 이 복잡하고 혼란하고 바쁘기만 한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내려놓는 미덕을 발휘하게끔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