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모든 사람은 잊지 못할 인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 보편적인 기억을 불러내 누구보다 아름답게 다듬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아련한 아름다움에 반했고, 곧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2023년 6월, 미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관객과 비평의 극찬에 힘입어 금방 미 전역에 확대 개봉되었다. 로튼토마토에 기재된 이 영화의 언론 리뷰는 총 290개가 넘었으며, 그중 긍정 리뷰는 96%에 달한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으로 침묵의 순간을 가득 채운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양한 감정을 끌어올린다는 찬사를 얻었다. 절제된 대사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으로 메꾸어졌고, 그 어려운 연기를 해낸 주연 배우들에게는 호평이 잇따랐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련한 감정을 몸으로, 음악으로, 영상으로 표현해 낸 이 영화는 침묵 속에서 빚은 감정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 영화의 대사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순간에 겨우 터져 나오는 탄식’ 같은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 대화에 녹아 있는 이 크고 작은 탄식들은 은근하지만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이 각본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묵언의 순간이 다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그대로 비어 있기 때문이다. ‘사이’라는 지시어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침묵들 속에 잠재한 감정은 관객이자 독자가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찾아내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독서를 통해 독자는 이 이야기에 참여하게 되며, 두 주인공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아울러 영화를 먼저 본 관객들은 이 각본을 읽음으로써 원래의 이야기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차분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화려한 컬러를 흑백으로 바꾸었을 때 그 이미지의 구조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모습처럼, 침묵해야 할 때 완전히 침묵하는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은 거의 시적인 감흥을 느끼게 한다. 빛과 소리를 담기 전, 〈패스트 라이브즈〉가 얼마나 고독한 이야기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오직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인물들의 말과 침묵을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 한국어판 각본은 셀린 송 감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영화 속 주요 장면을 흑백으로 담은 공식 스틸 이미지를 담고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한 셀린 송 감독의 사인이 들어 있어 소장 가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