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인류의 절반을 비인간화”해온
인식의 지층을 정교하게 탐침한다.
_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 저자
‘이 세상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에 해당하는
혐오와 폭력들의 꼼꼼한 기록.
_정혜윤 PD, 《앞으로 올 사랑》 저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의 저자
이라영의 한국어판 특별 서평 수록!
여성 혐오의 기원과
고통받는 판도라의 딸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의 저자 잭 홀런드는 대담하게도 기원전 8세기에 지중해에서 여성 혐오가 태어났다고 선언한다. 이때 시인 헤시오도스의 손에서 태어난 ‘판도라 신화’가 탄생하여 여성은 인류를 타락하게 만든 죄인이 되었고 ‘모든 옛이야기와 철학이 벌을 내리는’ 존재로서 경멸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 사회와 플라톤의 이원론 또한 여기에 발맞추어 여성을 남성의 반대되는 존재, ‘열등한’ 것으로 격하했고 ‘나쁜’ 여자와 ‘좋은’ 여자로 구분 지었다. 그렇다면 혹시 모권제 사회가 존재했을 수도 있는 선사시대에는 여성 혐오가 없었을까? 저자는 이제까지 발굴된 소수의 선사시대 유물만으로는 판단내릴 수 없다고 암시한다. 사실 여성이 숭배받는 사회에서도 여성 혐오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날 수 있는데, 예로 성모 마리아를 점점 강렬히 숭배했던 중세에는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다. 저자는 문헌상에 남아 있는 증거들을 살펴봤을 때, 적어도 먼 옛날 켈트족 문화에서는 한결 성별 관계가 균형 잡혀 있었지만 그리스와 로마가 서양 문명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여성을 열등한 존재,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바라보는 이원론이 세상의 철학을 떠받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폭넓은 조사를 통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왜 여성 혐오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인지 설명하고 트로이의 헬레네부터 현대 여성들에 이르는 다양한 ‘판도라의 딸들’과 이들을 억압한 남성 종교가, 철학자, 예술가, 권력자 등이 가져온 해로운 영향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플라톤과 사도 바울은
과연 고대의 선진적인 페미니스트였을까?
어떤 이들은 플라톤과 사도 바울을 페미니스트라고 칭송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는 하나’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로 앞서 나간 페미니스트였을까? 플라톤의 이원론은 ‘육체’와 ‘변화하는 감각의 세계’를 경멸했고 명백히 이를 여성과 동일시했다. 그의 세계관에서 여성 수호자는 성적 측면 전부를 부정당했을 때에만 남성과 동등해졌다. 사실상 여성은 명예 남성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한편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 혐오에 과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는 여성이 열등하고 아이 같은 본성을 지닌 이유로 머리가 벗어지지 않는 점을 들었고, 여성이 남성보다 치아 수가 적다고 주장했다. 후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꼬집었다. “이따금 한 번씩 아내가 입을 열게 허용했다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몇 천 년간 서양 문명뿐 아니라 타 문화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기독교의 원죄 교리의 철학적 바탕이 되었다. 유대인에게서 인류 타락 신화를 받아들이고 플라톤에게서는 이원론을 받아들인 기독교는 임신 자체를 신의 완전함에서 멀어지게 된 과정으로 보았고, 남성들은 타락하기 전에 신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으나 여성의 개입으로 인해 완전히 좋은 것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논리를 내내 견지해왔다. 순결에 대한 집착, 여성의 역할 제한, 가부장제도 옹호, 임신 중단 반대 등을 통해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여성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여성 혐오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페미니스트로 언급되기도 하는 사도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여성은 남성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은 교회 안에서 반드시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규정했으며, 심지어 플라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육체를 본질적으로 악한 것으로 간주했다.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음행을 막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이 좋다’라며 인간의 성을 필요악으로 여긴 사도 바울의 관점은 교회 안의 여성 혐오적 시각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성스러움과 순결이 점차 동일시되었다.
그리고 서기 431년에 가톨릭 공의회가 정식으로 팔레스타인 출신 ‘동정녀’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고 선포하자 여성은 전적으로 자신의 성을 경멸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고귀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인간도 올라서지 못한 ‘하늘의 여왕’으로 격상된 마리아는 수동적이고 성적인 면모를 결여했기 때문에 이 지위를 얻은 것이었다. 또한 마리아는 여성들이 스스로의 인간적인 본성 탓에 부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고,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모순된 본보기가 되었다. ‘마녀’라고 비난하며 끌어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성녀’로 격상하는 것 또한 여성을 비인간화하는 방법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마녀사냥과
여성 혐오적 창작물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마녀사냥을 인류 박해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이라고 평한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점이 투옥과 고문과 처형을 당할 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악령이 실재한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여성을 고문하고 여성과 악령 사이의 성관계에 집착했다. 이때 마녀사냥에 큰 정당성을 제공한 희대의 여성 혐오적 서적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가 출간되었는데, 인류의 지식을 널리 퍼뜨리게 해준 인쇄기가 발명되어 퍼지기 시작한 덕분에 이 책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속 여성 혐오를 세세히 해설한 저자는 다른 창작물 속의 여성 혐오 또한 눈여겨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의아함이 들기도 하는 여러 여성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당시 세태를 반영한 창작물들 속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여성 캐릭터, 반대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은근히 강화하는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며 여성 혐오의 복잡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흥미진진한 대목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고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햄릿》, 《리어왕》을 다룬 파트이다. 섹스와 권력의 문제를 다루며 남성의 완전한 승리를 대변하는 듯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본 관객들이 막판에 찝찝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저자는 어머니의 재혼을 비난하는 햄릿과 자신을 배신한 두 딸을 저주하는 리어왕이 어떻게 전체 여성의 성을 비난하는지 들여다본다. 사실 햄릿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거트루드는 딱히 욕정에 찬 인물로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햄릿의 혐오감은 과연 무엇에 기인한 걸까?
여성 혐오를 핵심 원동력으로 삼은 나치와
911 테러 이면의 여성 혐오
저자는 루소, 칸트, 쇼펜하우어 같은 여성 혐오 철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히틀러에게 영향을 준 니체를 19세기의 가장 파급력 있는 여성 혐오자라고 표현한다. 여성을 폄하하는 이원론을 주장한 니체와 오토 바이닝거, 그리고 대학살을 자행한 히틀러의 삶에는 유사점이 존재한다. 모두 소외되었고 여성과 성숙하고 안정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치당의 강력한 원동력인 여성 혐오는 독일 여성의 순결함과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강조하며 여성을 공적인 삶과 권력 구조에서 쫓아내려 했다. 나치당의 구호 중 하나는 “여성은 여성 해방에서 해방되어야 한다”였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 혐오는 독일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어떤 학자들은 ‘홀로코스트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단지 유대인으로 받아들여진 희생자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단언하지만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의 저자 잭 홀런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증오받는 집단이 박해를 당할 때 그 집단의 여성들은 선별되어 더 수치스럽고 잔혹한 일을 겪으며, 인종적, 종교적 증오심이 설칠 때 그 기저에 깔린 여성 혐오가 더욱 발산된다고 주장한다. 나치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 여성들은 완전히 나체가 된 채 살해당했고 온갖 기괴한 부인과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 여성들이 겪은 처절한 상황들을 그리며,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살인이 산업 공정화된 나치식 비인도적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여성 혐오는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한편 저자는 911테러를 일으키게 된 일련의 사건들이 40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 대학에서 여학생이 베일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노한 남학생이 여학생 얼굴에 염산을 투척한 사건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세력의 모순적인 태도와 탈레반의 핵심 사상인 여성 혐오를 설명하면서 911테러의 복잡한 이면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테러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분석력이 빛을 발휘한다. 여성을 인간으로 대우하려는 시도에 맹렬하게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근래 역사와, 마침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여성을 억압하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돈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저자는 ‘위선은 서양 세계가 이슬람 세계와 관계를 맺는 근본 방식이다’라고 비판한다. 서양 정부들은 탈레반이 인권을 침해하고 특별히 여성을 겨냥해서 수많은 잔혹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대체로 무시하거나 오히려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동에서 서양의 영향력과 이슬람의 전통을 위협하는 가치관이 확산되는 데에 대해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던 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를 불린 결과 결국 두 대의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하는 테러가 일어났다. 저자는 911테러까지의 일련의 흐름을 해설하는 한편으로 정치외교의 장에서 여성 혐오는 전혀 쟁점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여성 혐오는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
바퀴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남자는 여성 혐오를 발명했다. 다른 어떤 편견도 이토록 끈질기게 계속되지 않으며 이토록 극단적인 특징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인종도 그렇게 오랜 기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고 어떤 집단도 그렇게 전 세계적 규모로 차별받지 않았다. 어떤 편견도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편견도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여성 혐오를 두드러지게 했어야 할 특징들이 이상하게도 여성 혐오를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해서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저자는 “내가 여성 혐오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면 여자들은 내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호기심에 가득 차서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자들은 내가 그걸 정당화하려 한다고 지레짐작하며 말없이 윙크를 보내거나 고개를 끄덕였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여성 혐오는 여전히 ‘사회에서 받아들인 상식’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 혐오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저자는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사망하기 전 세상의 가장 오래된 편견을 가능한 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저항의 수단 중 하나를 남겨두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