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지중해를 보았다 - 밥 차리는 남자의 단짠단짠 인생 자문자답
양파를 썰다 집을 나간 이유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평범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하면서 떠올린 갖가지 기억과 추억과 상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들이라, 그렇다면 왜 그 남자가 양파를 볼 때마다 분노를 느끼는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가 양파를 볼 때마다 분노를 느끼는 건 바로 어느 늦은 가을의 일요일에 일어난, 뜻밖의 일 때문이다.
별나게 한가한 날. 남자는 동네 시장에 마실 나가 해삼 세 덩이를 샀다. 저녁 준비를 위해 그 해삼을 꺼내 놓고 그는 잠시 고민했다.
날로 먹을까, 익혀 먹을까.
그는 중식당에서 먹어 본 해삼의 풍미를 집에서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해삼야채볶음’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자는 해삼의 배를 가르고 실처럼 생긴 주황빛의 내장을 뽑아낸 뒤, 듬성듬성 썰었다. 냉장고 야채 칸에서 마늘과 브로콜리와 표고, 양파를 꺼내 함께 썰었다.
여기까진 별일 없었다.
그런데 해삼과 야채들을 프라이팬에 들이부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뒤늦게 합류한 아내가 재료를 볶으면서 내뱉은 무미건조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양파를 너무 잘게 썰으니까 요리가 지저분해지는 거 같아.”
양파 때문에 지저분하다니……. 그는 결국, 집을 나갔다. 그러고는 휘황한 일요일의 밤거리를 홀로, 외롭게 걸었다. 남자는 요리할 때 양파를 너무 잘게 썬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열을 받아 축 늘어진 양파의 모습이 입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변명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월요일 아침, 그는 언제나처럼 아내와 함께 아침을 준비했다. 미역줄기를 먹기로 했다. 미역줄기를 30분 정도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이제 프라이팬에 볶으면 된다. 미역 줄기볶음에 별다른 재료는 필요하지 않다. 당근을 조금 썰고, 비린 맛을 잡기 위해 마늘 두어 개를 다졌다. 그러고는 큼지막한 양파를 하나 꺼내 들었다.
남자는 가지런한 양파채를 가로로 돌려놓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칼을 놀렸다. 잘게 썰어진 양파가 하얀 눈꽃의 형상으로 도마 위에 피어날 때쯤, 그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이 책에는 이처럼 요리 주변, 요리 전후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독자들은 토요일 오전의 한가한 브런치 대하듯 홀가분하게, 그리고 밥 차리는 남자의 실없는 자기고백에 피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이 위로되는 푸드 힐링 에세이!
남자는 투박한 식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씻고, 자르고, 데치고, 볶고, 찌는 동안 광활한 자연이 자신의 집 부엌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팍팍한 도심에 앉은 채 숲과 밭과 바다의 한가운데로 순간 이동을 감행하다니 정말 멋진 일 아닌가.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 또한 그 남자가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 준 임성한 작가(드라마 <하늘이시여> <인어 아가씨> <보고 또 보고> 집필)의 말대로 ‘가슴이 따뜻해지고,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지고, 영혼이 위로되는’ 감동과 여운을 선사받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고픈 욕구를 억누르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