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 -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
“같은 곳을 다녀도 그들이 보았던 것은 달랐다”
애덤 스미스, 에드워드 기번, 괴테 등 최고의 지성을 탄생시킨 여행, 그랜드 투어
□ 그랜드 투어란?
근대 초 유럽의 어린 청년이 교육의 일환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장기간 여행하던 관행. 17세기 후반 종교 분쟁이 가라앉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영국의 상류층은 자식을 유럽 대륙으로 보내 해외 문화를 체험하고, 외국어, 세련된 매너와 외교술, 고급 취향을 배워오게 했다. 이런 여행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유럽의 근대를 만든 초석이 되었다.
여행자들의 개인적인 기록들을 추적하여 촘촘하게 복원한 18세기 유럽 문화사
조기유학과 해외여행은 유럽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독창적이고 섬세한 연구로 발표하는 책마다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연세대 서양사학과 설혜심 교수가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처음으로 ‘대중교양서’를 선보인다. 소수 엘리트만이 누릴 수 있었던 호사스러운 여행인 그랜드 투어는 유럽의 근대를 만들어낸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상이지만, 유럽에서조차 그랜드 투어를 다룬 진지한 연구는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고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주제다.
설혜심 교수는 당시 여행을 떠났던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이 부모와 주고받은 편지, 동행 교사가 남긴 글 같은 개인적인 기록부터 당시의 여행 지침서, 신문 사설 등 공적인 기록까지 세심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이들의 교차되고 겹쳐지는 여정을 통해 18세기 유럽의 모습을 복원해낸다.(그간 18세기 유럽은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인 15∼17세기, 그리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태동기인 19∼20세기 사이에서 다소 소외되어 왔다.) 이 책은 18세기의 산물이었던 그랜드 투어가 어떻게 지금의 EU와 같은 유럽의 동질성을 형성했는지, 영국인들이 사 모은 그림과 예술품이 유럽의 예술과 건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들이 배운 대륙의 매너가 어떻게 ‘젠틀맨’을 만들었는지, 여행 중 만난 철학자와 문인 등 당대 지성인들의 교류가 어떻게 계몽사상을 만들고 전파했는지 등 서양 근대의 탄생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모험에서 여행으로, 탐험에서 교육으로
공교육 불신으로 시작된 특별한 교육 여행의 탄생
그랜드 투어 이전의 여행은 목숨을 건 모험과 탐험의 과정이었다. 이는 ‘지리상의 발견’과 ‘탐험의 시대’로 정의된다. 이후 종교 갈등이 완화되고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영국인들은 차차 ‘체험’의 관점에서 외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지금은 명문대학으로 자리 잡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는 당시 진부한 커리큘럼으로 비판과 불만의 대상이었다. 국왕까지 나서 새로운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만들 것을 주문할 정도였다. 명문가의 부모들 사이에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입학시키느니 차라리 여행을 보내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로크, 라이프니츠, 루소 등도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훨씬 높이 평가했다. 당시에는 실용적인 학문으로 분류되었던 역사, 철학, 시, 수사학 등 인문학 외에도 승마, 프랑스어, 춤 등 대학이 가르쳐주지 않는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문화의 찬란한 유산이 남아 있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해외 문화를 체험하고 세련된 매너와 외교술을 익히며, 예술품을 감별하는 고급 취향을 기르는 이런 ‘교양’ 수업은 진정한 엘리트나 젠틀맨이 되기 위한 기본으로, 차세대 국가 지도자라면 꼭 거쳐야 할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