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사회 - 남아도는 인생들을 위한 사회학
“내가 잉여라니?!”
기성의 눈으로는 볼 수 없던 것들에 대한 도발적 보고서
웃기지만 아픈 이 시대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
거리로 나와 “난 나야!”라고 외치던 발칙한 개인들은 이제 모니터 앞에서 “내가 잉여라니!”라고 외친다. 왜 그들은 스스로를 ‘남아돈다’고 칭하는가? 왜 긍정&도전 정신으로 세상에 나오지 않고 키보드 위에서만 재능을 낭비하는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청년들을 조종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를 분석한 문화비평가 최태섭이 잉여라는 기묘한 존재 방식에 주목했다. 저항이 없는 청년담론부터 병맛 넘치는 댓글놀이까지, 잉여를 만들어낸 현대 사회의 구조를 잉여 스스로 눈으로 통찰한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을 잉여로 만드는 잉여사회의 실체를 파악한 이들만이 의미심장하게 ‘ㅋㅋㅋ’라는 웃음을 흘리며 달라진 세계를 포착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스스로를 ‘잉여 인간’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 세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시선으로, 잉여사회의 정체를 밝히다
모두가 사소하다 비웃어 넘기는 것들을 파헤치는 문화비평가 최태섭
단군 이래 ‘가장 영향력 없는 집단’ 오늘의 ‘젊은 잉여’들을 파헤치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를 분석했던 최태섭이 현대 사회를 뒤덮고 있는 잉여 현상에 주목했다. ‘열정 노동’뿐만이 아닌 수많은 소외와 착취가 만연하는 이 답답한 시대에 작은 숨통을 트기 위한 노력이다. 잉여라는 키워드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 “대학 못 가면 잉여인간이야, 인간쓰레기 되는 거야!”와 같은 일갈에서 시작하여,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하지 못한 자신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고, 이제는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느끼는 불안한 정서와 그것을 잊기 위해 무의미한 일에 몰두하는 행위까지도 합산한다.
잉여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로 청춘인 그들은 왜 인터넷 안에서만 자신을 표출하는가? 그들은 왜 긍정과 도전을 외치는 세상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모니터 앞에 앉게 되었나? 이 책은 댓글놀이, 병맛 웹툰, 키보드워리어와 일베 논란을 들여다보며 잉여들의 심리와 행태를 추적한다.
자기 자신도 ‘잉여’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회학도이자 문화비평가인 최태섭은 어른이나 선생의 눈이 아닌 잉여 스스로의 눈으로 이 현상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무엇보다 《잉여사회》는 잉여를 낳게 된 현대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 의의가 크다. 현대인이 말려들 수밖에 없는 ‘대잉여시대’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청년들의 75%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해
급속히 퍼져나가는 ‘청춘담론’이 가리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다
보통 잉여라 하면 곧바로 ‘청년 백수’, ‘아프니까 청춘’인 20대를 떠올린다. ‘88만원 세대’부터 ‘20대 개새끼론’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이 사회 변화와 발전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분석한 담론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그렇게 근 10년간 ‘청춘담론’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는데, 청춘들의 현실은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세대 담론은 나이가 들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본과 권력의 구조 안으로 진입시키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고, 한국 사회의 경우 그들을 ‘특정 세대’로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세대론은 나름의 역할과 힘이 있었지만, 지금의 20대론은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20대’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백수이나 더 이상 청춘도 아닌 이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저자는 지금과 같은 현실이 계속된다면 20대의 정체와 무기력은 몇 년 후 20대가 될 10대의 문제가 되고, 청년들이 30대와 40대가 되어서도 이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니 이제 세대론을 넘어서서 잉여사회의 근원적 구조를 통찰해야만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성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체들의 생태
현대 자본주의가 존속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버려지는 존재’들의 실체
저자는 잉여란 ‘젊으나 쓸모없는 백수들’이 아니라, 앞으로 현대 자본주의가 존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낼 ‘거대하나 무기력한 타자’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좀비 혹은 유령 같은 존재’로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풍미하는 존재의 대명사가 있어, 어떤 시대에는 노동자였고 어떤 시대에는 신세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그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떤 누구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구현할 수 없는 시대’. 그런 ‘비자발적인 주체’들은 스스로를 대변하는 용어로 ‘잉여’를 선택했다.
그들은 왜 뜻도 잘 모를 이 어려운 한자어를 자신의 존재방식을 표현하는 단어로 택했는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남아도는 인생’이라고 자조하게 되었는가? ‘잉여인간’이라는 말이 담은 ‘현대 사회의 남아도는 존재’라는 개념은 1840년대 투르게네프의 소설에서 처음 형상화 되었고, 국내에는 1958년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으로 알려졌다. 그 시절까지만 해도 잉여인간은 소수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에 성공한 1명 외의 9명이 잉여가 되고, 이제는 자본의 선택은 받았으나 혹사를 못 견뎌 탈락할 수 있는 그 1인까지도 잉여다.
성장은 느려지고 사람은 남아도니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쳐질 수 있고, 그렇기에 남부럽잖은 스펙을 가진 이들도 자신이 잠재적인 잉여임을 인식하는 시대다. 삼포세대라 불리는 실업 청년부터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불필요하다면 언제나 무엇이든 치울 준비가 되어있는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존재를 잉여로 만드는 ‘잉여사회’가 되어간다. 즉 잉여들은 끊임없는 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삼키지 못한 찌꺼기이면서, 이 체제가 유지되는 이상 결코 없앨 수는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잉여는 새로운 가능성일까? 아니면 시대와 불화하는 실패한 세대일 뿐일까?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사라지지도 않고 완벽하게 처리되지도 않는 잉여들이 품은 에너지를 현대 사회의 가능성 중의 하나로 본다. 그 잉여적 에너지의 발현을 가장 쉽게 관찰 가능한 곳인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보여준다. 우선 인터넷 공간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소통하고, 놀고, 존재할 수 있는 공유지이다. 저자는 이 인터넷 공간에서 발현되는 잉여 문화의 발생과 생태를 꼼꼼하게 훑어 내리며 잉여들, 나아가 이 사회의 내밀한 회한과 욕망을 파악해간다.
이말년과 귀귀 등의 ‘병맛 웹툰’으로 대표되는 잉여들의 서사 ‘병맛’을 한 번 들여다보자. 이 말은 ‘병신 같은 맛’의 준말이다. 자신의 삶을 매끄럽고 단단한 스토리로 꾸며낸 ‘자기소개서’가 병맛의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기승전결 없이 불확실하거나 어이없이 흘러가는 이 현실의 이야기에 잉여들은 공감하며 작은 위안을 얻는다. 병맛이라는 정서 아래 잉여들은 자기를 ‘고자’나 ‘철벽녀’라고 칭하며 소통과 관계 불가능성을 자조하거나, 좌표만 있다면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는 ‘키보드워리어’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최근 큰 이슈가 된 ‘일베’ 사태에서 잉여 현상 중에서도 부정적인 것들이 겹치고 쌓이며 현대 사회의 곪아 터진 상처를 드러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이버스페이스의 역사를 훑으면서 잉여들의 부정적 측면은 물론 연대와 공감, 창작 능력에 이르는 긍정적인 측면까지 그들의 다양한 심리와 행동을 설명한다.
저자는 잉여가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다듬어지지도 않았고, 또 다듬어지지도 않을 것이기에 작으나마 그들에게 이 시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좀비처럼 죽여도 죽지 않는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 모든 잉여들에게 공통적으로 말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 과업은 ‘살아있을 것, 그리고 적어도 스스로를 솔직히 받아들이며 살아있을 것, 그 후 진정으로 만날 것.’ 즉 생존, 성장,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