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기말 오스트리아 빈 청춘들의 초상!
1900년 전후의 오스트리아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대표작『라이겐』. 1897년에 발표된『라이겐』은 슈니츨러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으로, 당대의 엄격한 성 도덕에서 벗어나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성을 노골적으로 주제화하고, 성적 욕망을 자연적 본능으로 묘사하여 사회적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라이겐'은 원형으로 선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을 말한다. 슈니츨러는 이 춤의 형식을 빌려, 열 명의 인물들이 차례로 연인을 바꾸며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야기는 창녀와 군인, 군인과 하녀, 하녀와 젊은 주인, 젊은 주인과 젊은 부인, 젊은 부인과 남편, 백작과 창녀 등 모두 열 커플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첫 에피소드에 등장한 인물이 마지막 에피소드에 다시 등장하는 '라이겐'과 같은 원형 구조를 보여준다.
함께 실린『아나톨』은 슈니츨러의 출세작으로, 당대 젊은이들의 데카당스적 경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일곱 편의 단막극으로 구성되어 있다.『구스틀 소위』는 경솔하고 허영심에 빠진 한 신출내기 소위의 이야기를 내적 독백만으로 서술한 최초의 독일 작품이다. 당대의 젊은 장교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양장본]
☞ 시리즈 살펴보기!
50년 만에 부활한 정통 세계문학 시리즈「을유세계문학전집」. 1959년부터 시작된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은 1975년에 100권으로 완간되며 한국 출판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출간된 지 50년 만에 새롭게 내놓은 이번 세계문학전집은 목록을 모두 다시 선정하고 완전히 새로 번역한 것이다. 작품의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의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까지 다룬 작품 해설을 덧붙였다. 2020년까지 총 300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저자소개
지은이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슈니츨러는 1900년을 전후로 호프만스탈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던 작가다. 활동 당시 그는 그의 작품이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는 비판을 자주 들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슈니츨러가 인간 심리를 마치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진찰하듯 지극히 분석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작품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슈니츨러의 작품이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는 비판을 들은 것은 실제로 그가 의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1862년 당시 빈의 저명한 후두과 의사인 요한 슈니츨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대 문제로 아버지를 자주 찾아오던 연극배우들을 통해 슈니츨러는 일찍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로 뜻을 펼치지 못했고, 결국 빈 의대에 들어가 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문학에 가 있었고, 의사로 일하던 시기에도 헤르만 바르, 후고 폰 호프만스탈, 페터 알텐베르크 등 빈 모더니즘 작가들과 교류했으며, 여러 편의 희곡과 단편 소설도 발표했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의학 공부는 슈니츨러의 정신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빈 의대는 모든 병의 원인을 물리적, 화학적 원인에서 찾는 유물론적 의학이 주도했다. 슈니츨러는 의학 공부를 통해 인간을 자유의지나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법칙의 영향권 안에 있는 생물학적, 물질적 존재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물론 이러한 인간관은 근본적으로는 19세기 중반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자연 과학의 영향과 관계가 깊다.
슈니츨러는 희곡과 소설에서 모두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죽음』, 『아나톨』, 『사랑 놀음』, 『라이겐』, 『구스틀 소위』,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등이 있다. 1928년 딸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은 뒤 1931년 빈에서 뇌출혈로 눈을 감았다.
옮긴이 홍진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술 상황의 이론과 작품 분석의 실례: 토마스 만의 두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자연주의의 자연 과학적 문학 컨셉과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의 “성(城) 이야기”」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