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외면 : 실천시선 207
복효근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따뜻한 외면>이 실천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일상 속의 현상과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번 시집에서는 작은 존재로부터 깨닫는 삶의 의미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서정시의 언어로 펼쳐지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63편의 시들은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마취하는데 급급한 이 시대의 힐링 열풍에 진정한 치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치유를 꿈꾸지 않는 상처에서 피는 꽃
정갈한 시어는 고요한 절의 둘레를 거닐듯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편안하다. 불교적 종교시는 아니지만 복효근의 시는 향을 사를 때 풍기는 목탁의 향을 살며시 품고 있다. 그에게 삶이란 혁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일지라도 주어진 길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따뜻한 외면>에서 이 결연한 수용의 태도는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 “아픈 지느러미를 파닥여야 하”(「성(聖) 물고기」)는 물고기나 “때론 3미터도 넘게 쌓인다는 눈”을 “다만 견딜 뿐”(「자작나무 숲의 자세」)인 자작나무처럼, 저마다 고단함을 인내하는 사물의 이미지로 포착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자포자기나 수동적인 자세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생을 귀하게 여기는 성찰의 결과이다. 시인은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수행의 과정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부러졌던 뼈처럼/돌은 얼음의 뼈가 되어 얼음은 더 단단해”(「얼음연못」)지듯 고통이 삶을 완성시킨다는 생의 진실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 한다. 만남과 이별이 하나이고 탄생과 죽음이 하나이듯, 존재에게 있어서 고통은 생득적인 숙명이라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떨쳐내려고 몸부림치는 대신, “저마다 생이 갖고 있는 가파른 경사”(「자작나무 숲의 자세」)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타이어의 못을 뽑고」)아 고통까지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를 소망한다. 그렇기에 소쩍새, 공벌레, 바지락, 종이컵 등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지난날은 밑동부터 잘라 떠나보냈고 눈서리 칠 내일은 믿지 않”(「맹목」)는 자세로 ‘현재’를 치열하게 버텨내는 존재들에게는 마치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그에 걸맞은 숭고함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고통에서 “치유를 꿈꾸지 않”(「타이어의 못을 뽑고」)겠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함께하기 위해서 무심하게 멀어져야만 하는 것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고된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덮어준다는 것」)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어나” “스스로의 노고를/네 덕으로 돌”(「거울」)리는 끈끈한 유대이다. ‘나’와 ‘당신’, 나아가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따뜻한 외면??의 시편들이 상처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포근한 온기를 가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복효근의 시세계에서는 어떠한 타자의 침입도 폭력적이지 않다. 속이 죄 빠져나간 고등어에게 소금이 들어와도, 바지락 속에 작은 어린 게
한 마리가 들어앉아 있어도, 모두 “빈 내 몸에/너를 들이고/또 그렇게 빈 네 몸에/나를 들이고/비로소 둘이 하나가”(「한 손」) 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이렇듯 타자가 나의 내면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결국 사랑의 과정이기에 그 속에서 일어나는 떨림, 그리움, 외로움까지 전부 하나로 따뜻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시집의 표제시인 「따뜻한 외면」 역시 장애물이 있는 세계에 노출된 두 존재가 함께하는 것을 보여준다.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_「따뜻한 외면」전문
‘비’라는 상황에 맞서서 새와 나비는 나뭇가지로 날아들고, 원래 나비를 잡아먹는 새는 현재의 어려움을 함께 맞서고 있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외면한다. 나비로부터 거리를 둔 새의 적당한 무심함은 천적관계의 공생을 잠깐 동안 가능하게 해주는데, 이는 나비에 대한 배려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외면’이라는 차가운 단어가 ‘무심함’을 통해 따뜻한 것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시인은 죽은 국화를 보고 “애초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멀리서 받아 적다」)다고 말하거나, “쓸데없이 이들의 역사에 간섭을 하고 있”(「새의 행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존재 그대로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는 신념이 자리한 흔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양한 개체들이 한 곳에 모여 질서를 세우고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한 비밀이기도 하다.
물론 평화와 고통이 공존하는 삶을 맨발로 걷다 보면 때로는 쇠약해져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슬픔과 절망이 덮쳐오기도 한다. 특히 죽어간 이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노환을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시편들을 통해 절절하게 묻어나온다. 그렇지만 죽은 새에게서 민들레가 피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어머니가 새 몸을 받아 태어났을 거라고 여기듯, 시인은 다시 자연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한 발 물러나 자리를 옮긴다. 뚱딴지 꽃 옆에서 잠깐 눈물을 훔치고 다시 “생이 조금은 가벼워”(「전망 좋은 곳」)지는 것을 느끼며 일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생에 대한 잔잔하지만 굳센 의지가 읽힌다. 그것은 “다만” “쥐뿔같은 현실주의”일지라도 “맥없이 주저앉는 것들에 대한 욕설”을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제 갈 길”(「맹목」) 가는 존재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