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을 말하다 2 - 이덕일 역사평설
SERI CEO 추천도서 『조선 왕을 말하다』 1, 2권으로 완간!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2010 SERI CEO 추천도서’로 선정된 『조선 왕을 말하다』 1권 2010년 5월 출간 에 이어 『조선 왕을 말하다 2』가 출간되었다. 시대와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저술에 힘쓰고 있는 저자 이덕일은 이 책에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왕들에 대한 핵심 쟁점을 날카롭고 명쾌하게 바로잡았으며, 동시에 그 시대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살펴보고 그 군주가 그 지점으로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조명했다.
『조선 왕을 말하다 2』는 조선의 왕들을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효종, 현종, 숙종’,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예종, 경종’, ‘성공한 임금들-세종, 정조’,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태조, 고종’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1부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
① 효종-같은 현실을 보고도 소현과 봉림 효종 두 형제의 꿈은 달랐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전혀 의외의 인물에게 대권이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대운大運이 따라준 것이다. 그러나 대운은 여기까지다. 대운을 천명天命으로 승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인조가 소현세자 일가를 죽임으로써 생각지도 않게 대권을 잡은 효종은 굴러온 대운을 천명으로 전환할 방법을 숙고했다. 그것이 북벌이었다. 효종은 현종·숙종을 잇는 삼종三宗 혈맥血脈의 시대를 열었다.
② 현종-국상 예법을 둘러싼 사대부의 싸움에 왕권만 추락하다
인조반정 이후 국왕은 천명에 의한 절대적 존재에서 사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로 전락했다. 서인은 소현세자를 제거하고 효종을 추대했지만 둘째 아들로 낮춰 보았다. 국왕을 사대부 계급의 상위에 있는 초월적 존재로 보려는 왕실의 시각과 제1사대부에 불과하다고 보는 서인의 시각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국왕의 권력 강화냐, 사대부의 권력 균점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런 양자의 시각은 현종 재위기에 두 차례에 걸친 예송 논쟁으로 나타났고, 서인들은 경신 대기근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들은 뒤로한 채 당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몰두했다.
③ 숙종-왕권 강화, 임금에겐 달고 백성에겐 쓴 열매가 되다
숙종은 두 당파를 경쟁시켜 왕권을 강화하는 길을 택했다. 한 당파를 이용해 다른 당파를 제거할수록 왕권은 강해졌다. 그러나 숙종은 왕권 강화 자체에 목적을 두었을 뿐 강화된 왕권으로 추구할 목표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왕권은 강화되었지만 백성은 여전히 사대부의 착취에 시달렸다. 왕권 강화와 백성이 따로 노는 괴리 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숙종은 조선 후기 가장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군주였지만 그 권력을 백성과 나눌 줄 모른 실패한 군주이자 외로운 군주였다.
2부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
④ 예종-힘보다 뜻이 큰 군주, 개혁 능력의 한계에 다다르다
당위성만으로는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명분뿐 아니라 개혁 대상의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현실적 힘을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다. 예종은 공신 집단 해체라는 분명한 개혁 목표와 실천 의지가 있었지만 현실적 힘을 확보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특히 남이를 비롯한 신공신 집단을 제거한 것은 구공신에 맞설 세력을 스스로 꺾은 결정적 하자였다. 예종과 공신 집단 간의 갈등은 예종의 급서로 해소되고 구체제로 회귀했다.
⑤ 경종-정권에 눈이 먼 노론, 힘없는 국왕 경종 제거를 당론으로 삼아 실행하다
왕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헌정 질서는 왕권 계승의 예측성과 투명성이다. 갓 태어난 왕자가 원자가 되거나 세자로 책봉되면 차기 국왕으로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세자를 국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종은 세자 대리청정을 거쳐 국왕이 되었지만 집권 노론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론은 ‘경종 축출, 연잉군 옹립’이라는 당론을 정할 정도로 당력이 막강했다. 그러나 왕조 국가에서 국왕을 몰아내고 특정 인물을 추대하려는 구상은 심한 반발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정권에 눈이 먼 노론은 이를 강행하면서 숱한 비극을 낳았다.
3부 성공한 임금들
⑥ 세종-지식 경영의 시대를 열어 르네상스와 국력 신장을 이루다
세종은 지식 경영인이었다. 그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 축적한 지식으로 국가를 경영했다. 공리공론보다는 역사처럼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산지식’을 선호한 것이다. 또한 세종 재위기에는 입지전적 인물이 많이 출현했는데, 능력만 있으면 천인이라도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만큼 역동적인 사회였고 이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⑦ 정조-민심이 원하는 변화 위해 신도시발 농업·상업 혁명에 시동을 걸다
국가정책을 목적의 선함이나 당위성만으로 추진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책에 관계된 여러 세력의 이해를 조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민심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정책 추진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세력이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추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조의 사도세자 묘소 이전 과정은 이런 정책 수행의 전범을 보여준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면서 사도세자의 배후 도시라는 정치적 의미를 뛰어넘는 가치를 담았다. 조선의 농업 혁명과 상업 혁명을 선도하겠다는 미래 가치를 담아냈다.
4부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
⑧ 태조-전쟁 영웅에게 쏠린 민심, 개국의 원동력 되다
전통 시대에는 왕의 즉위나 새 나라 개창의 정당성을 ‘천명’에서 찾았다. 천명을 받았는지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민심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기도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집권 세력이 기존 체제를 유지할 정당성과 능력을 상실했을 때 민심은 새 나라가 열리기를 희구하기 때문이다.
⑨ 고종-자질 부족한 임금의 오락가락 정치 행보, 망국은 필연이었다
역사의 격변기에 변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고종은 실현 불가능한 전제 국가 수립에 집착하면서 모든 변화를 거부했다. 군주 혼자 힘으로 나라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그렇기에 군주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 흐름에 부응하거나 맞서 나라의 운명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려고 노력해야 한다. 군주는 나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로 때로는 목숨까지도 거는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고종은 이 모든 것을 거부했고 망국 군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