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사랑했을까
이혼 남녀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
서일우는 직장을 그만 뒀다. 12년의 사회생활 동안 많이 지쳤기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전까지 쉬기로 했다. 퇴근하여 들어오면 맞아주던 눅눅한 어둠이 앉을 자리를 줄이기 위해 집 안을 꾸미기로 했다. 비어있는 책장을 채우기 위해 찾은 서점에서 뜻하지 않게 몇 년 전 죽은 친구의 애인을 만났다. 그녀와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박혜숙, 전 부인이다. 곧 일우 어머니의 생신이라 선물을 사놓았고 회사로 보내겠단다. 일우는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회사를 나가지 않는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우의 하루는 평범하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의 전화를 받고 나간 자리에 낯익은 여자가 앉아있다. 1년 전까지 일우와 사랑을 나눴던 주연이다. 그녀가 선배와 결혼을 한다고 한다. 일우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어. 오빠를 잊는다고 노력은 했는데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았나 봐."
기분이 이상해진 일우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혜숙의 집으로 향한다. 맥주 한 잔하자는 그의 말에 혜숙은 별 말 없이 그를 따른다. 일우는 오늘 겪은 일을 혜숙에게 늘어놓는다. 그의 말이 끝나자 차갑게 내뱉는 혜숙의 한 마디.
“나랑 있으면서 내 얘기, 우리 얘기 한 적도 없잖아. 그냥 좀 보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왔다, 새로운 애인은 생겼냐 뭐 그런 얘기하러 오면 더 좋지 않겠어?”
그녀의 말에 일우는 가만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다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 엉켜버린 운명의 끈에 대한 이야기
서일우는 30대 중반의 이혼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에는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와 동년배는 물론, 대여섯 살 어린 여자도, 무려 열여섯 살이나 차이나는 여자도 그가 좋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운명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무엇이 변하지 않는 운명인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결국은 배신당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만 몰두한다.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도 정착하지 못함은 아마도 운명에 대한 그의 갈구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을 한 그가 지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찾은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낯선 외국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그가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이 작품을 읽으며 사랑과 운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