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살인 계획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적이 있는가?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 잠 못 이루고 고통 받은 적이 있는가? 이 소설은 살면서 한 번쯤 그런 기분을 경험해본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비극적 찬가이다. 왜곡된 인간 심리를 서늘하고도 강렬하게 그린 『선량한 시민』으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고, 한 집안의 60년 가족사를 묵직하게 엮어낸 『2월 30일생』으로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재차 증명한 김서진 작가가 이번에는 한 남자의 죽음을 갖기 위해서 과거, 현재, 심지어는 미래의 자신까지도 기꺼이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의 이야기로 10년 만에 돌아왔다.
아무런 생각도, 욕망도 가져본 적 없던 여자가
살인범을 처벌하기 위해 세상의 한복판에 뛰어들다
남편의 육체적 폭력과 정서적 학대에 시달리다 어느 날 약에 취한 그의 칼에 아이마저 잃고 만 홍진. 혼자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아무 생각도, 행동도 없이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증상인 ‘경직성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는다. 살면서 뭔가 하고 싶다는 욕망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홍진은 퇴원한 뒤에도 산속 깊은 곳의 절에서 매일의 예불과 스님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며 오랫동안 속세와 단절된 채 쳇바퀴 돌 듯 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주지스님의 부탁으로 홍진과 거처를 함께하던 여중생 소명이 죽음을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로 수사가 종결되지만, 직접 쓰지 않고 프린트한 유서나 누군가 일부러 주머니에 넣어놓은 듯한 임신테스트기 등 석연치 않은 점투성이다. 홍진은 소명의 짐에서 우연히 살인범의 증거를 발견하고, 범인 이지하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한 뒤 절에서 나와 속세의 삶으로 복귀한다. 그녀는 옛날 남편과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이지하가 운영하는 대형 휴대폰 대리점의 근처에 정육점을 개업한다. 주스에 농약을 타거나,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이지하를 죽이는 계획을 세우지만, 세상 물정에 극히 어둡고 단순한 논리적 사고에도 어려움을 겪는 그녀의 어설픈 시도들은 우스꽝스러운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이지하를 미행하던 홍진은 그의 동창회에 참석한 화인의 농담을 엿듣고 그에게 다가가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경찰인 화인은 홍진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자일 것이라 추측하고, 범죄 예방 차원에서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동향을 살핀다. 그렇게 마주침을 반복하던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함께 홍진의 집에서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묘한 친밀감을 형성해나간다. 그러던 중 이지하가 실종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