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직 의사 - 어느 보통 의사의 생존기
`자네,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그 병에 걸렸겠는가?`
의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환자가 되어있었다.
<봉직 의사>는 저자가 신장내과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다시 블로거 `닥터 키드니`가 되기까지의 변화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환자로서, 엄마로서의 삶도 살아야 했던 어느 보통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 누구보다 환자의 아픔과 엄마의 고단함을 알기에 쓸 수 있었던 공감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봉직 의사>는 의사의 의술 저서가 아니다.
환자가 의사의 언어를 잘 이해해야만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듯이, 의사이지만 환자이기도 한 그녀는 환자의 아픔을 잘 알기에 그들의 입장에서 병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성 복통과 방광염, 우울증 등의 병마와 싸워 이겨낸 이야기는 그저 보통 환자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의사로서 무엇이 문제였었는지를 정확히 알 뿐이다.
<봉직 의사>는 `을`의 이야기다.
자신의 병원이 아닌 월급을 받는 의사로서의 고단한 입장을 주저 없이 단정하게 토로한다. 봉사의 순수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천상 의사지만, `봉직의`의 벽을 뚫고 나가보려 한다.
그렇다. 이 책은 환자였던 의사, 엄마인 의사의 생존기이자, 글 쓰는 의사, 유투버의사로서의 탈출기다.
`영향력 없는 어느 여의사의 고백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내 글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날갯짓조차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미약하지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여기 이곳에 살아있다는 증거다.`
누군가는 열심히 사는 여자 의사의 인생을 백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암소 여의사다.
의사는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는 줄 알았다. 진료실 안 여의사들의 우아한 모습으로는 결코 연상되지 않았다. <봉직 의사>에서는 완전한 노동자로서 의사의 모습들을 과감히 보여준다. 의사도 시댁이 있고, 돌봐야 하는 아이와 집안일이 있음을 날것 그대로 웃프게 묘사하고 있다.
의사는 항상 `갑`인 줄 알았다. 간호사가 그만 둘까봐 고민하는지 몰랐다. 당당한 그녀들의 모습으로는 눈치챌 수 없었다. 병원에서 실적 평가할 때 저조한 성적을 받아든 학생처럼 쩔쩔맬 줄 몰랐다. 우리의 단단한 착각이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 줄만 알았다. 의사는 무조건 세단을 몰 거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가정부를 두고 명품 가방을 휘두르며 쉬는 날에는 골프를 치러 다닐 것 같았다. <봉직 의사>에서는 진정한 명품의 가치를 깨달은 검소한 그녀가 오늘도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의사는 안 아플 줄 알았다. 말도 안되지만 의사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봉직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의사의 영역은 베일에 쌓인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들도 아픔과 욕망을 가진 사람이고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봉직 의사>를 만나 새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