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조금 불편한 용서

조금 불편한 용서

저자
스베냐 플라스펠러
출판사
나무생각
출판일
2020-10-29
등록일
2021-01-25
파일포맷
COMIC
파일크기
2KB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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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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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용서라는 위대한 행위에 대해
다시 혹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
. . .
용서란 항상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다.
ㆍ 이해한다고 무조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_ 한나 아렌트
ㆍ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다. _ 자크 데리다
보상이나 참회가 없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가능할까
용서, 참으로 거창한 말이다. 물론 일상에서 우리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또 자주 듣는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용서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큰 상처를 입히고 도덕적 무게와 책임을 수반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떨까? 개개인의 용서를 가볍게 취급할 수도 없지만, 그 본질과 가능성을 다시 배움으로써 용서에 배인 부정성을 긍정성으로 전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가 이야기한 대로 우리는 모두 ‘기브 앤 테이크’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하나를 주면 나도 하나 이상은 받아야 하고, 내가 손해를 보면 그 상대도 손해를 봤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서도 같은 개념일까? 그 대가를 받지 못해도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까?
용서의 본질에는 포기의 부정성이 짙게 배어 있다. 보복과 앙갚음, 대가, 보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슬픔과 상처에 대한 책임을 돌리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런 위대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용서는 어렵다. 저자의 말대로 “논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그렇다고 공정하지도 않다.” 고통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 프리드리히 니체 등 용서를 언급한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 이유를 추적한 끝에, 저자는 우리가 더 이상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한 주체로 변모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용서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엄마에게 버림을 받고 유년 시절부터 용서가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엄마를 이해하면 용서할 수 있을까? 엄마를 사랑하니까 용서해야 할까? 잊지 않아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의 큰 챕터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용서는 이해한다는 뜻일까?’, ‘용서는 사랑한다는 뜻일까?’, ‘용서는 망각한다는 뜻일까?’ 이 세 가지의 질문을 하면서 저자는 우선 용서라는 이상적 개념을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객관화한다. 또한 용서의 철학적 족적을 추적하고 홀로코스트와 같은 반인류적 범죄 사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등 복수의 영역에서 용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용서는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용서는 우리의 숙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가진 능력이다. 용서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으로써 줄곧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리게 된다. 애써 망각하려는 사람은 더 나은 삶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기억과 환기를 통해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화해와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랜 추적 끝에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용서란 결국 자기 구원의 행위라고.
용서의 왕도는 없지만, 어떠한 용서도 최종적일 수는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용서가 가능한지, 아니면 불가능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두 명의 유대인 사상가를 인용한다. 바로 자크 데리다와 한나 아렌트다. 한나 아렌트는 이성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다 용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에게서 해답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용서 개념은 철저하게 합리성의 경계 안에 머무른다. 제아무리 간청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나아가 애당초 용서의 가능성을 고민하려면 죄인의 참회가 조건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질문한다. 과연 참회는 언제 진실한가? 참회를 하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결국 저자는 자크 데리다에게서 답을 찾는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기 있는 행위이며 또한 용서의 선사적 힘을 기꺼이 떠안을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한 일을 다시 환기하는 작업, 이것이 가능성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물론 저자는 현실적인 고려도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서의 그 심연을 안팎으로 정확히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죄 판결로, 그리고 보복을 포기하는 것으로는 용서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용서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린 것이다. 즉, 용서는 시간과 함께 완성된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 항상 다시 새롭게 배우는 것, 이것이 바로 용서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지어야 할 무거운 짐이다.
용서의 왕도는 없다. 각자 자기 자신만의 용서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떠한 용서도 절대 최종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다시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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