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를 알면 두렵지 않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비관에 의한 공포 바이러스!
저자는 오래전부터 다음과 같은 진단을 해왔다. 경제성장을 이룩한 선진국들이 집단으로 불행한 이유는 현재의 상태가 지속되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일종의 ‘붕괴 불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선진국은 ‘불안’과 ‘공포’라는 집단 심리가 팽배하며, 이것은 비관주의 지식인들이 만든 ‘비관적 어젠다’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비관에 의한 공포 바이러스’ 때문이라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역사의 화살은 지속적으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고, 인류의 진전을 위해선 비관주의 역사론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저자가 지금 세계 지성에서 추방된 낙관주의를 소환하는 이유는 왜일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낙관주의적 역사관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는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과 같다’는 문장에 저자의 모든 주장이 담겨 있다.
포기하지 않는 낙관주의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저자의 낙관주의론은 “걱정 말고 행복하자Don’t worry, be happy”는 주장이 아니다. 걱정은 하되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자는 것이다. 낙관주의Optimism는 우리가 세상의 많은 잘못과 결함에 눈감도록 하지 않는다. 대신 낙관주의는 우리가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하면 문제는 풀릴 수 있다는 확신이자 다짐이다. 낙관주의는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이다. 1세기 전 진보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낙관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남자와 여자들에게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 이러한 믿음은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기반하여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진전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학계에서 시작된 비관주의가 공론의 광장으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그래서 오늘날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은 세상이 곧 무너질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는 도달할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낙관주의는 다시금 지적으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진전을 위한 최선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주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염성 질환, 환경, 핵무기, 화산, 우주 암석의 전 지구적인 위협, 공교육 시스템이 나아갈 방향, 전면적 재평가가 필요한 교육 제도, 인구의 노령화와 정부의 경직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인공지능, 개발도상국의 빈곤 해결 등 지구인들의 고민에 대해 낙관주의적 관점에서 대안을 보여준다.
낙관론에 대한 강력한 주장과 풍부한 근거를 제시한다 - 〈월스트리트저널〉
불평등, 민주주의, 기후변화에 대하여 훌륭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 〈뉴욕타임스〉
비관론을 좋아하는 선정적인 매체들에 대한 반격 - 〈워싱턴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