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시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한국인의 소통, 이성에서 감성으로!
한국적 소통의 대안을 제시하는 책!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우리 삶에 소통이 중요한 이유’에서는 소통의 중요성을 다룬다. 소통은 단지 말의 교환 과정인 대화와는 차별화된다. 서로의 생각과 뜻을 상황과 감정, 표현방식을 고려해 전달하고 또 그 과정을 거쳐 해석하는 일종의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소통이다. 그래서 소통이라는 과제는 익숙하지만 중요한 ‘난제’인 것이다. 2장 ‘한국적 소통의 5가지 키워드’를 통해서는 한국적 소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주고받는 소통의 시그널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소통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원래’ 그런 것처럼 무심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였던 한국적인 소통을 2장을 통해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3장 ‘한국인의 소통법 솔루션, 감성’에서는 한국적 소통의 대안인 감성소통을 다룬다. 지금까지 한국인의 인간관계를 지탱한 키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따뜻한 기운이 자신을 낮추게 했고, 드러내고 요구하기보다 소극적으로 완곡하게 표현하는 겸손을 자라게 했다. 이제 이러한 막연한 ‘감성’을 다듬어 모두에게 이로운 감성적 소통으로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4장 ‘더 나은 소통을 위한 5가지 제안’을 통해 우리의 소통은 180도 바뀌게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행동은 일상에서 다져진 습관에서 나온다. 우리가 꺼내어 쓰는 말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소통과정도 평소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4장에서는 한국인의 감성적 소통을 위해 무엇을 일상에 녹이면 좋을까 하는 ‘조금’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공감하며, 조금 더 겸손하게. 그렇게 ‘조금’이 소통의 ‘소금’ 역할을 하고 나아가서 우리 관계를 빛나게 하는 ‘황금’이 되어줄 것이다. 5장 ‘진심 어린 배려와 존중이 기본이다’에서는 감성소통의 핵심인 배려와 존중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잡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소통은 모든 상황에 맞는 방법론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 사이의 소통이야말로 태도가 방법론을 넘어서는 진짜 ‘방법’이 되어야 한다.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면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성적 소통이 실현될 수 있다.
[책속으로 이어서]
감성소통은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이 바라는 대화의 함축된 맥락에서 출발한다. 좋은 대화는 주고 싶은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은 선물을 건네는 것이며, 좋은 소통은 모두가 만족하는 일종의 ‘기브 앤드 테이크’다. ‘감성소통’과 ‘듣기 좋은 말’을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했다면 이는 큰 오해다. 감성이란 외부 자극 전체에 열려 있는 감각의 작용이다. 자극이 사람에서 왔든지 상황에서 왔든지, 감성이라는 것은 그 자극과 상황의 변화에 대해 느끼는 것을 의미하기에 다분히 수용적이어야 한다. 이런 경우의 ‘수용적’은 오히려 감성의 ‘적극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도를 나타내는지 끊임없이 교감해야 하기에 조금 더 기민하게 느끼고 반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질문이 있는 그대로의 질문인지 아니면 질문의 형태를 가진 다른 무엇인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_ P. 139
유머를 적재적소에 잘 쓰면 큰 빛을 발하지만 자칫 실수하면 주워 담지 못하는 상처가 된다. 특히 웃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타인폄하 유머other-disparaging humor’는 정말 위험하다.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외모 비하형 유머들은 대부분 부족한 캐릭터를 희화해서 웃음을 유발하려는 쪽에 속한다. 순간적으로는 큰 웃음을 유발하지만 막상 웃고 나면 쓴맛을 남기는 유머다. 주위에 모든 사람이 웃었더라도 폄하당한 사람이 웃지 못했다면 그것은 나쁜 유머다. 유머의 진정한 의미는 웃기게 말하는 능력이 아니다. 유머가 지닌 가치는 그 이상의 포괄성을 지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유머는 표현 방식이 아니라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과 즐겁게 웃어줄 수 있는 감성 능력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이는 F.B.I 방법론에서 다루었던 감정의 미러링과도 궤를 같이한다. _ P. 162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 보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에서는 행복은 인간이 존재하며 추구해야 할 ‘아레떼arete’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행복은 저녁식사 한 끼에 느끼는 감정에 불과하다. 그는 ‘행복은 강도intensity가 아니라 빈도frequency의 문제’라고 한다. 큰 것 한 방이 아니라 작은 것 여럿이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한다.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즐거운 소통을 하는 것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사람에게 따뜻한 정서를 경험하고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에게 정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행복은 소통의 수단에 따라 상호작용해서 나를 행복하게 한다. 거창한 말솜씨나 웃기는 능력이 아니라 기분 좋은 미소로 신뢰를 만들고 한마디 대화에 웃음을 담아 보내면 충분하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기억은 정서의 자극으로 남겨진다고 했다.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은 잘 모르지만 좋은 느낌의 사람으로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저 가볍게 씨익~. _ PP. 168-169
한국에서 더치페이라고 하면 공식적인 모임 혹은 매우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자기 몫에 따라 돈을 내는 문화가 일상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 밥을 사면 나중에 어느 정도를 사야 할지 고민이 되고, 관계가 불편해지는 데다 구성원 중 누군가 빠지면 계산이 복잡해져서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차라리 밥을 안 사주는 게 서로에게 좋은 셈이다. 적당한 거리두기로 각자의 몫을 해결하는 게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문화. 신선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잘해주려는 의도는 결국 그에 맞는 답례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대가 기대만큼의 피드백을 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선의가 상대의 요구가 아닌 베푸는 자의 독단이라는 점이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도 상대의 동의가 없으면 좋은 마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횡단보도에 서 있는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무턱대고 돕지 말고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감성’을 발휘하는 소통은 ‘동정’과 동의어가 아니다. _ P. 180
최근 기업교육 현장에서는 세대 간 갈등에 대한 교육이 만연하다. 문제는 이 과목의 수강생이 대부분 리더나 관리자들이라는 점이며 내용 역시 소위 ‘90년대 생’으로 일컬어지는 MZ세대의 이해가 주를 이룬다. 아무리 리더가 조직의 색깔을 만든다지만 리더만 부하를 이해하면 된다는 식의 변화는 무지에 가깝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새로운 조직에 몸을 담은 사람 역시 조직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신입사원 역시 자신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기성세대에 대한 특성을 공부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호 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사이가 좁혀질 때 진정한 수평적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수평적 문화는 조직 구성원이 함께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기에 ‘관계주의’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조직은 다양하다. 누구나 하나 정도의 집단에 속해 있다. 퇴근후 가정이나 동호회 등 새로운 조직에 다시 속하고 그 안에서 맺는 관계도 다양하다. 집단 내 역할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디에 머무르던지 관계에 따른 방식의 존중과 소통, 그리고 존중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소통문화 속에 머무르는 구성원들이 내적동기 유발 역시 잘 된다고 하니, 잘되는 집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_ PP. 199-200
나는 2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과 행동은 오로지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싸한 말과 본질을 들여다보고 하는 말은 다르며 좋아할 것 같은 말과 좋아하는 말은 다르다. 결혼 후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인 부부가 있다. 보통 자신들에게 자녀가 있는지 묻는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위로를 건네는데 그들은 그게 오히려 상처가 된다고 했다. 자꾸 언급되는 것이 힘이 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아~ 그러시군요’ 하고 마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이 진짜 따뜻한 배려일까? 둘째는 해주면 좋은 말과 해야 할 말은 완곡한 어법이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직구로 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적 감성소통은 정으로 표현되기에 보통 말하는 이는 돌려 말한다. 그로 인해 듣고 해석하는 이도 문맥을 있는 그대로 읽기보다 속내를 해석하려고 애쓴다. 늦게 귀가한 딸에게 일찍 다니라고 나무라는 아버지가 사실은 딸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라고 한다면, 과연 그 뜻과 생각은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기억하자. 제대로 ‘contact(접촉)’하지 않으면 ‘un-tact(신조어로서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뜻)’ 된다는 것을. _ PP. 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