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여자 -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도축장에서 찾은 인생의 맛!
편집장도 없이 야근도 불사하고 뼈 빠지게 일한 대가가 해고라니, 그것도 복도를 쿵쾅거리며 걸어 다녔다는 게 해고 사유라니! 10년 동안 사귄 애인과 헤어지고 정체불명의 치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음식 전문 기자에게 어처구니없이 날아든 해고 통보. 말 그대로 30년 인생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기분을 맛본 그녀는 어느 날 창밖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벌레를 낚아채는 개똥지빠귀를 관찰하다가 느닷없이 맘을 먹는다. “더는 진짜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다. 내가 직접 진짜가 되겠다”고….
30년 인생이 바닥으로 내리꽂혔을 때,
펜 대신 칼을 집어 들었다
‘탑 텐 레스토랑’, ‘가성비 좋은 열두 가지 메뉴’, ‘망고를 먹는 다섯 가지 방법’ 같은 기사를 쓰면서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있었다. 저자는 그 허기를 접시 위에 올라온 음식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면서도 음식과 자신의 거리감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식탁 위에 올라온 스테이크가 어떤 고기의 어떤 부위에서 왔는지, 그 동물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 레스토랑의 주방에 오게 되었는지 등,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고, 답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캐머스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사냥과 낚시를 떠나던 어린 시절, 채식주의자로 전향한 십 대 시절,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한 이십 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먹는 행위는 단순한 연명의 수단이 아닌 삶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연관된 기술과 지식의 차원에 있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음식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러한 기술과 지식은 오히려 멀어져갔다.
캐머스는 존 버거를 인용하며 “경험의 순간에 다가가는 행위에는 면밀한 살핌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육식이라는 경험의 순간에 다가가기 위해 버거가 설정한 지표를 따라 음식과 나,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연결성을 회복하려는 집념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녀는 산업화된 식품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거리와 연결에 대한 감각을 되찾기 위해 도축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죽음이 음식과 교환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며 식탁 위에 고기를 올릴지 말지부터 고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서류함 구석에서 만기일이 안 된, 사용 이력 없는 신용카드를 찾아내 가스코뉴행 비행기를 예약한다. 자신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연결성을 되찾기 위해.
“내가 돼지를 죽이다니!”
도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육식의 본질에 관한 가장 사실적인 에세이
가스코뉴에서 캐머스는 자신들이 재배한 곡물로 돼지를 먹이고, 그 돼지를 직접 도축하고 가공해 시장에 내다파는 샤폴라르 집안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도축과 정형 기술을 배운다. 이들은 종돈부터 소시지까지, 한 마리 동물이 식탁 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장악하고 소비자들에게 보증하는 사람들, 캐머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일을 저항적인 형태로 완전하게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샤폴라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녀는 음식 전문 기자로 일하던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전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눈앞의 상황들을 설명할 어떤 단어도 찾지 못한 채 블랙홀에 빠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프랑스어는 ‘몰라요’와 ‘미안해요’ 정도고, 돼지고기의 가장 비싼 부위를 싸구려 꼬치구이용 고기로 둔갑시키며, 돼지 사체와 포옹하듯 미끄러지고, 대부분은 헛발질을 하면서도 서서히 돼지의 흉곽을 ‘책처럼 펼치는 법’, 안심이나 등심 따위가 아니라 피와 내장, 머리와 혀, 살과 뼈 모두를 훌륭한 음식으로 바꾸어내는 법을 하나둘 깨우치게 된다.
그밖에도 캐머스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 규모로, 옛날 방식에 따라 일을 하는 가스코뉴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을 샤폴라르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준 ‘장봉 통역가이자 카술레의 여왕’ 케이트 외에도 오리와 거위를 방목해 키우며 전통의 방식으로 간을 살찌워 푸아그라를 만드는 예한느, 인동덩굴 같은 집주변 재료들을 이용해 소량의 증류주를 오랫동안 양조해온 그로, 농부시장에서 만난 자부심 가득한 고기 생산자와 치즈 장수들, 그리고 이들에게서 매주, 미국에서는 아침 식사 한 접시에 해당할 고기를 일주일에 걸쳐 신중하게 조리하고 최대한 다양한 부위를 맛보길 원하는 소비자들까지….
99퍼센트에 해당하는 산업화된 식품 시스템과 공장형 축산의 바깥에서 상업적으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삶에서 캐머스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좁은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게릴라들, 그리고 이러한 게릴라들의 네트워크를 발견한다. 잠봉, 소시송, 부댕블랑 등의 샤퀴테리(프랑스식 육가공품), 콩을 넣어 진득하게 졸인 카술레, 그리고 전통술인 아르마냑과 달달한 폴록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향기만큼이나 매혹적인 가스코뉴 사람들의 삶과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 동물의 사체를 눈앞에 두고 죽음과 음식이 교환되는 과정에 따라붙는, 하지만 우리가 꾸준히 외면해온 긴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외면해온 육식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그 중간지대에서 흘러나오는
맛과 지혜, 그리고 진실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결국 캐머스가 가스코뉴에서 배운 ‘기술’은 ‘기르고, 죽이고, 먹는’ 모든 과정들에 깃든 역설과 복잡성을 깨닫고 그것을 기쁨과 애정,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삶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가스코뉴의 소규모 도축장에서 천장에 달린 레일에 매달려 이동하던 돼지의 사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한 캐머스의 이야기는 포틀랜드로 돌아와 도축과 정형 등 고기 수업을 진행하는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Portland Meat Collective)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끝이 난다. 도축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누구보다 고기를 사랑하지만 누구보다 그 고기를 만들어낸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터부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그 터부만큼 고기 자체를 거부하는 문화가 강한 포틀랜드 한복판에서 장인의 전통적인 도축과 정형 기술을 가르치려는 그녀의 행보는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적어도 캐머스는 미디어의 주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다. 그러나 ‘섹시한’ 여자 도축사라는 이미지는 그녀 자신에겐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 자신의 성性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시도를 비양심적이라고 보는 시선들, 혹은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에 굴하지 않고, 캐머스는 자신의 접시 위에 올라온 햄 한 조각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각오를 유지한다. 결국 이 집념이 직접 도축한 돼지와 오리, 토끼들로 자신과 친구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간호사 레비, 캐머스처럼 잘 나가던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정육점에서 홍일점으로 일하는 조와 같은 미국의 샤폴라르들을 움직인다. 캐머스가 이 포틀랜드 괴짜들을 결집시키는 과정은 삶에서 영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칼을 든 여자》는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해 낯설고 힘든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여자의 꿈과 그 꿈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용기와 집념, 그리고 정직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대부분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점에서 끝까지 진실을 파고들려는 저자의 시도는 우리 앞에 놓인 접시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캐머스는 지금도 열심히 기르고 죽이고 맛보며, 그 모든 행위들에 깃든 역설을 의식하며,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의 중간지대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