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은 집이야기
『한권으로 읽는 집이야기』는 2010년 나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 어느 날 이 책을 다시 꺼냈다. 예전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주기가 1년으로 짧아진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만 우리의 주택문화는 여전히 제자리다. 한 세기 전에 집짓는 현장에서 회자(膾炙)되던 ‘집짓고 10년 늙는다’는 말이 2020년인 지금도 여전히 오르내린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것은 우리의 시스템의 문제다. 집은 건축주, 건축사, 시공업체가 3인4각 경기다. 하지만 건축사와 시공업체의 2인3각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건축주는 건축에 문외한이라 건축사와 시공업체와 함께 동등한 경기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건축설계사무소에서는 경기에는 참여하지만 시공업체랑 열심히 뛸 생각이 없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열심히 뛴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2020년에도 우리나라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에 문외한인 건축주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도박판에 앉아서 엄청난 판돈을 놓고 벌이는 일생일대의 도박이 되어버렸다. 도박은 결과는 뻔하다. 죽은 운이 들었을 때 집을 짓는다는 한탄과 후회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현실이다. 나의 일은 집과 관련되어 있기에 만나는 분들 대부분은 자신의 집을 지으시려는 분들이다.
제가 5분의 시간을 드릴 테니 당신이 짓고 싶은 혹은 살고 싶은 집에 관해 저에게 설명을 해 보세요?
만나 이런저런 집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누기 전에 대뜸 내가 선수를 치면, 대개의 분들은 본인이 짓고 싶은 집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한다 하더라고 제가 듣기에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태반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짓고 사는 집의 형태가 도대체 몇 가지나 될까? 그래서 세어보니 고작 열손가락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 집들을 대략적으로 안내할 책이 있다면 집을 지으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지 않겠나? 이것이 이 책을 나오게 된 동기였다. 열손가락의 집에서 하나하나씩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로 내 여건과 상황 그리고 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집은 손가락을 접어가면 결국 둘 정도 많아야 세 가지의 집으로 압축된다. 집이란 마음만 가지고 짓는 것이 아니고 가장 현실적인 건축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집이 좋은 집입니까?” 이고 다른 하나는
“평당 얼맙니까?”이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싸고 좋은 집은 없는 것처럼 어떤 집이 좋은 집이냐 하는 것은 백이면 백 다 다른, 그야말로 개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마치 여러 자식들 중에 어느 자식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과 다름없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 개인이 선호하는 집이고 주관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만족하는 집도 없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집도 없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개개인마다 그 집이 갖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보편적인 집이 될 것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결단이라면 거기에 맞는 준비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을 짓는다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을 거는 도박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