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공포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많은 사람들이 무서움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공포의 대상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극복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불은 물로 끄거나 담요로 덮어버리는 방법이 있고, 뱀에 물리면 상처 부위에서 심장에 가까운 쪽을 묶어 지혈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듯 지식으로 습득한 상황이라면 인간은 공포를 느끼기 전에 어떤 행위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미지에 존재에 대해서는 그저 두려워할 뿐이다.
정주현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미지의 존재 뿐 아니라, 익히 알고 있던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는 귀신도 등장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아버지, 남편, 아내 등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주목한다. 그 모습들은 평소라면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새로운 것이다. 거대한 바퀴벌레로 변태하는 반려자, 항상 웃고 있던 아버지의 이면, 아픈 사람을 챙겨주는 노파의 추악한 모습 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작가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작품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그저 손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앉은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매우 잘 드러낸다. 이 작품집은 정주현 작가가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로 낸 36편의 소설 중 10편을 추려 만든 책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 담긴 기기묘묘한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