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소감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김혼비의 신작 산문집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전국축제자랑》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에세이스트 김혼비의 신작 산문집 《다정소감》이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책 제목 ‘다정소감’은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말이다. 동시에 김혼비가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을 뜻하기도 한다. 모든 다정한 사람은 조금씩 유난하다. 작가의 문장은 그래서 유난히 반짝인다. 그렇게까지나 멀리 내다보고, 이토록이나 자세히 들여다본다. 실낱같은 마음으로 울었다가 매듭 같은 다정함으로 다시 웃는다. 격식을 갖춰 농담한다.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그러니까, 다정소감은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감상이요, 다정을 다짐하는 일이기도 하다. 꽤 긴 시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기에 만들어진 우리 마음속 얼음들이 서서히 녹길 바라면서.
다정을 바라보다
시작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어떠한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하는 의문에 김혼비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동네 마트에서 김솔통을 발견한다. 김솔통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한번 김솔통을 쓰고 그와 같은 용도를 대체할 다른 물건을 떠올리기 불가능한 존재. 주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잘 보이지 않고, 잊히기 쉽고, 작고 희미하나 분명히 거기에서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존재. 다정은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다짐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김혼비는 당장 김솔통이 되기라도 한 듯 그동안 만나왔고, 스쳐 지나갔으며, 동경했고, 아껴왔던 사람들로부터 얻은 감정들을 글에 담는다. 난생처럼 패키지여행을 떠난 중년, 맞춤법은 곧잘 틀리지만 삶에는 소홀함이 없었던 사람들, 나이 들수록 더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축구팀 언니들, 별생각 없이 써왔던 말에 상처받았을지 모를 어릴 적 친구…… 이 모두는 작고 소중하다. 모두가 다정스러운 소감의 빛나는 주인공이다.
다정을 주고받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사정과 사연을 안고 삶을 견딘다. 삶을 견디며 다정을 실천하고, 우정을 나눈다. 김혼비는 때로는 섣부른 호의가 아닐까 머뭇대고 때로는 우리가 통과해왔을 어떤 시절과 감각의 존재에 대해 단호히 말한다. 머뭇댐과 단호함 사이에서 만들어진 다정의 패턴은 하나하나 고유하되 또한 서로 얼기설기 연관을 맺는다. 첫 직장에서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대의 손길을 보낸 동료들 덕분이다. 오우삼과 왕가위가 있어 한 시절을 단단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나를 챙기고 보살펴준 친구가 있기에 불현듯 다가든 삶의 어두운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용기를 얻었다. 사람이 아닌 데서 얻은 다정 또한 각별하다. 코로나 시대 운동을 가능하게 해준 자전거부터, 라이딩을 끝내고 마시는 아이스커피와 나만의 방식으로 제철음식을 먹을 수 있게 도와준 감자칩과 맥주에 이르기까지…… 다정 박사 김혼비의 연구 주제는 광활하고 그가 만든 다정 백과는 이토록 사려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