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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른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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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른여덟

저자
최민석 저
출판사
사람사는이야기
출판일
2016-08-09
등록일
2017-02-1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783K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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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 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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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도망만 쳐도 괜찮다
난 꽤 오랫동안 도망을 쳐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항상 안정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 안정이 찾아오기 전에 죽을 것 같다.
빚이 있어도, 당장 월세가 몇 달치나 밀렸어도, 핸드폰이 요금을 못내 끊겼어도, 그래도 난 일단은 도망 쳐야겠다. 어딘가는 살길이 또 있겠지. 누가 했던 말처럼 그깟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어디서 또 못 구할까.
봄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니 또 천장에는 비가 샌다. 벌써 3년째다. 집주인에게 네 번인가 말을 했지만 들어먹지를 않는다. 월세 밀렸다가 그러는 건가. 나갈 테면 나가라는 소린가?
한 달 밀린 핸드폰 요금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 입금해버렸다. 통장 잔액은 십만 원. 조금 무리하며 이것저것 빚 정리를 하다 보니 요번 달도 빠듯하다. 월급 받은 지 아직 보름도 안 지났는데. 이번 달에 동생이랑 고향에 갈일도 있을 것 같은데.
전기세 청구 금액이 조금 이상하다. 이중 청구가 된 것 같다. 알아봐야하는데.. 뭐 내가 맞더라도 돈을 또 몇 만 원 내야한다.
빨리 모아서 빚부터 갚는다던 계획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본격적인 빚 갚기에 돌입하기 전부터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갚을 것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한 두어 달은 더 해야 아직 독촉장 날아오고 있는 건강보험을 다 낼 수 있고, 타 통신사 연체금 정리를 할 수가 있다. 버틸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런 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난 또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악조건을 해결하고 안정을 찾아야하지만, 그 안정이 찾아오기 전에 죽을 것 같으니까.
또 도망쳐도 괜찮다. 할 수 없잖아.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죽을 것 같아도 버티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하고 버티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바보 같은 짓이다.


난 나쁜 공기에 오염이 잘 된다
내가 한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하나있었다. 그건 바로 착하다, 라는 말이었다.
처음엔 좋았지만, 왠지 그게 무능함을 상징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싫어졌다. 착하다, 라는 말 외에 다른 말도 가끔 들으면 참 좋을 텐데.. 다른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착하다, 라는 말은 딱히 다른 매력이나 장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싫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산다. 내 천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바꿀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못 견디겠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착한 사람들은 오염이 쉽게 된다. 하얀색에 검은색이 물드는 게 순식간이듯이.
무례한 말과 행동에 한순간에 기분이 나빠지고,
건들건들 껄렁거림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은 옆에 있기도 싫다.
딱 봐도 민간인 신분이 아닌 문신쟁이들은 살면서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하기도 한다. 거리를 가득채운 자동차들의 불필요하고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는 평온한 마음을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일상의 가벼운 농담 같은 욕이 아닌 입에 담기도 싫은 더러운 욕설들은 조금만 들어도 내 영혼이 더러워지기도 하고,
공공장소의 에티켓 없는 행동들은 내가 그곳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들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더러운 공기에 숨 쉬는 게 편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불쌍한 사람이다. 맑은 공기의 청량함이 어떤지 잊었을 테니.
-본문 중..-


이 책에 실린 어떤 글은 읽다보면 조금 정치적이고 사회성이 짙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또 누군가는 검증 제대로 한 거냐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쳐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의 여과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생각을 적은 글, 이런 책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난 통계나 증거 같은 것 보다는 현상을 봤고 그것에 대한 느낌이나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저 같이 얘기하고 싶을 뿐..
한때 힐링 열풍이 거세게 불었고 많이 약해졌지만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이 누군가를 감히 위로하려고 쓴 글은 아니다. 그럴 재주도 없다. 능력도. 그저 같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처럼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 힘들어하고 상처받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을 테니까. 세상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로 이뤄져 있으니까.
난 마흔 살에 가까운 남자다. 요즘 시세로 쳐도 결혼 적령기는 이미 넘겨버렸지만, 난 아직도 만나는 여자나,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이 불안한 사회에 안정적인 직장은커녕 몇 달 단위로 옮겨 다니는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배운 것도 딱히 없고, 스트레스에 약하다보니 당연히 끈기도 없어서 ‘아직도 정신 못 차리냐?’ 소리도 자주 듣는, 보통의 삶을 사는 남들이 보기에 아주 한심할 수도 있는 그런 남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쓰였던 ‘루저’ 일수도 있겠다.
한두 달 쉬고 있을 때는 자신감도 급격하게 떨어져 매일 달고 사는 술과 함께 찾아오는 우울증 때문에 인기 연예인들이 많이 한다는 ‘자살’ 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심리 상담을 받아볼까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글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쓰다 보니 처음과는 색깔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또 뭔가에 상처 받고 글을 쓰고 있는데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을까? 설마.. 있겠지? 내가 살면서 받는 상처와 느끼는 고통 정도는 새 발의 피인, 그야말로 숨 쉬는 것 자체가 전쟁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나 혹은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엄살을 떠는 사람들도 있겠지. 각자 느끼는 고통의 가치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지만.
처음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썼던 글의 색깔이 조금씩 변해갔다. 내 상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도 생각하며 쓰기 시작했다.
‘이런 나도 산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보지 않을래? 물론 죽을 만큼 힘들다는 건 알지만..’ 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 날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날이 점점 많아졌다.
난 아직까지는 스스로 사회적 낙오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가진 자에 대해 질투를 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분노도 하고 절망도 한다. 삐딱한 시선인건 알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다.
이런 내 감성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같이 화내고 같이 뒷담화도 좀 하고 같이 슬퍼하고, 그러기 힘들지만 가끔은 같이 웃기도 하고..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딱히 marketing target 같은 건 없다. 그냥 쉽게 상처받고 아파하는 감성적인 사람들 정도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그런 사람들이라면 내 글에 공감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해줄 것도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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