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힘 - 회사 밖에서도 통하는 진짜 역량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보다 더 현대적인 고전 작품은 없다”
가장 통속적이고도 가장 현실적인 코드,
‘돈’을 통해 들여다보는 도스토옙스키 세계
세기를 뛰어넘는 철학과 사상, 예술을 빚어낸 도스토옙스키는 니체, 헤르만 헤세, 아인슈타인 등 전 세계 거장들에게 막대한 영감을 주었다. 이 위대한 문호가 수십 편의 걸작을 집필하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형편은 당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살면서 돈 걱정 없이 소설 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던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곤차로프와는 확연히 달랐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민중을 교화하고 인류에게 신의 섭리를 전달하고 예술의 전당에 불후의 명작을 헌정하려는 거룩한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은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선불로 받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썼다. 즉 그는 ‘팔리는’ 소설을 써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독자의 기호와 시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대 사회와 일반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 그에 부합하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특히 평생 절실히 ‘돈’을 필요로 하고 돈과 인간과 사회를 읽어내는 데 천재적이었던 그는 놀라운 혜안으로 돈을 이해하고 당대뿐 아니라 미래의 인류 사회에서 돈이 수행하는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가장 현대적이고 통속적이며 속물적인 소재인 ‘돈’을 ‘살인’과 ‘치정’과 함께 버무려 대중적인 추리소설과 멜로드라마의 기본 골격을 충실히 따르는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들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구태의연하거나 식상하지 않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가장 통속적인 이야기들이 가장 심오한 주제와 어우러져 시공을 초월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 문학 연구자 석영중 교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돈’이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에게 더욱 재미있게 다가가는 길을 안내한다. 복잡한 등장인물과 방대한 분량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도스토옙스키 고전에 재미를 붙이는 첫 번째 길잡이가 될 것이다.
“돈, 자유의 도구인가 속박의 덫인가”
도스토옙스키 생애와 고전에 대한 가장 대담하고 치밀한 해석
대문호가 남긴 돈의 철학을 통해 진정한 풍요의 의미를 고찰하다
나날이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오늘날의 우리처럼 평생토록 일확천금을 꿈꾸며 돈 문제에 시달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들여다보면 신선한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의 생애에서 언제나 가장 큰 이슈였던 돈 이야기가 소설들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면 왠지 모를 친근감과 연민마저 느껴진다. 석영중 교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무작정 형이상학적이고 고리타분하며 어려운 주제를 함축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돈과 인간’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오히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날카롭고 실용적인 통찰을 선사한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가난한 사람들』 등 이 책이 다룬 일곱 편의 소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부정적 요소’로서 돈을 바라보는 당대의 전근대적인 시각을 지양하고 돈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일절 배제한 채 ‘돈과 인간의 심리’를 본질적으로 파고든다. 나아가 돈이 필요하여 돈을 만들어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돈에 얽매여 좌지우지되는 인간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무한한 연민도 엿볼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끈인 돈을 현실에서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 없다. 이 점을 도스토옙스키는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가슴 아픈 일이고 인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돈이 지배하는 현실적인 관계를 그리는 한편 끊임없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관계를 꿈꾸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그리는 한편 돈이 다가 될 수 없는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그의 작품이 철저하게 이중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본문 중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갖는 막강한 힘을 우리는 결코 외면할 수 없고, 부의 양극화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남긴 돈의 철학은 돈과 삶의 균형을 찾기 힘든 우리에게 자못 심오하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필요한 사유의 실마리를 건넨다. 인생의 진정한 풍요는 무엇이고 진짜 가난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정답은 없겠지만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답을 찾게 될 것”이라고 석영중 교수는 말한다. 당신에게 돈은 무엇인가? 자유의 도구인가, 속박의 덫인가? 유구한 콘텐츠의 물결 속에서 고고하게 살아남은 도스토옙스키의 고전에서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만나보길 바란다.